Renaissance Architecture
르네상스 건축은 중세 건축에 대한 반발과 인본주의에 뿌리를 둔 그리스·로마 건축의 차용에서 시작되었다. 독립적이고 완결적인 형태를 특징으로 하고, 비례와 조화를 추구하여 이를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들은 설계의 완벽성은 자연의 모방에서 오며, 이를 위해 건축의 형태는 기하학 법칙에 맞게 구성되어야 하고, 모듈이 설계 전체의 치수를 결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로마 시대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Pollio는 건물의 구성 요소들 사이에 조화적 통일성을 주장하며 ‘디스포시티오Dispositio’와 ‘시메트리아Symmetria’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디스포시티오는 조화로운 배치, 시메트리아는 동일한 비례 법칙의 적용을 의미하는 대칭을 뜻한다. 즉 완전수와 인체 비례를 이상적 체계 단위로 정의한 것이다. 알베르티 또한 규칙성을 중시해, 비트루비우스가 제시한 두 개념을 ‘콘친니타스Concinnitas’라는 단일 개념으로 정리했고, 그리스 음계의 화음 체계와 건축의 이상적 비례가 상호 대응한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팔라디오도 비트루비우스와 알베르티의 법칙들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믿었으며, 스스로 ‘조화수열’에서 파생된 숫자로 건물의 치수를 산정했지만,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반영하여 일정 정도는 치수의 가감을 인정했다. 팔라디오는 건축 양식의 명확성, 질서, 대칭의 측면에서 합리성을 나타내면서도 고전적인 형태와 장식 모티브들을 사용했는데, 고전 건축이 자연의 법칙을 좇아 구성된 자연스러운 건축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팔라디오는 비트루비우스와 알베르티의 저서를 연구하여 당대 건축의 권위자가 되었다. 팔라디오는 《건축4서》를 통해 비트루비우스의 기술과 남아 있는 건축물을 상세하게 대조했다. 《안드레아 팔라디오-르네상스의 황혼을 거닐며》를 쓴 와타나베 마유미는 “팔라디오의 건축이 큰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건축4서》에 실린 도판이 응용하기 쉬운 형태로 추상화되고 보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팔라디오는 알베르티 이상으로 이론과 실천이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했고, 한층 실제적인 이론으로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후기 르네상스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개념 중에 하나가 바로 매너리즘이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의 유럽 예술을 잇는 사조로, 1510년경부터 1600년대까지 널리 퍼진 흐름이었다. 매너리즘의 시대를 후기 르네상스라고도 하며,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주의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표방한다. 매너리즘은 바로크 양식이 르네상스를 대체하기 시작한 이탈리아에서 약 16세기 말경까지 지속되었고, 북부 매너리즘은 17세기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매너리즘이라는 말은 ‘스타일’ 또는 ‘방식’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마니에라Maniera’에서 파생되었다. 영어 단어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마니에라는 아름다운 스타일, 연마 스타일 등 특정 유형의 스타일을 나타내거나 누군가의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스타일 같은 절대성을 표현한다. 습관적 모방과 반복 등을 뜻하는 부정적 의미의 매너리즘은 르네상스 시대에는 ‘양식주의’라는 의미였다. 양식주의란 독립적인 개성이 드러나는 개인의 양식으로, 다음 양식으로 옮겨 가는 과도기와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몰락하는 쇠퇴기에 나타났다.
매너리즘은 다빈치, 라파엘, 초기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와 관련된 조화로운 이상에 영향을 받고 그에 반응하는 다양한 접근법을 포함한다. 르네상스 예술이 비례와 균형,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반면, 매너리즘은 그러한 특성을 과장하여 종종 비대칭적이거나 인위적인 우아함을 추구했다. 매너리즘은 지적인 세련미와 인공적인 (자연주의적이지 않은) 특성으로 유명했다. 초기 르네상스 그림의 균형과 명료성보다는 구성상의 긴장과 불안정성을 선호했다. 문학과 음악의 매너리즘은 매우 풍성한 스타일과 지적 세련미로 특징 지을 수 있다.
알프스 너머의 르네상스도 짚어보도록 하자. 프랑스는 고딕 양식의 발원지였기 때문에 오랜 과도기를 거쳐 르네상스를 흡수했다.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갖는 다양한 의미는 가려지고 장식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매너리즘의 고전주의 변주를 뛰어넘는 장식의 변형이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초기 르네상스는 기존의 고딕 양식과 변형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결합된 형태였는데, 지나친 양식의 혼용과 장식성으로 르네상스 자체의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종교 개혁 발생지인 독일은 가톨릭의 본산인 이탈리아에 대한 반감이 있어 쾰른 시청, 아우구스부르크 시청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르네상스가 부분적으로 적용되었다. 가톨릭 세력이 강한 독일 남부 지역에서는 르네상스 양식과 매너리즘이 유입되어 독자적인 독일의 매너리즘이 발생하기도 했다.
영국은 이니고 존스Inigo Jones라는 건축가를 통해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이식되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그리니치의 퀸스 하우스Queen’s house와 화이트홀 궁전Whitehall Palace 연회장을 꼽는다. 퀸스 하우스는 존스가 이탈리아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 처음으로 건설한 팔라디오 양식의 건축이다. 팔라디오의 건축을 그대로 흉내낸 것이 아니라 팔라디오와 같은 정신으로 재창조했다고 평가받는다. 이후에 존스의 건축은 미국으로 건너가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흔히 보는 미국의 관공서 건축이 바로 팔라디오에서 시작해 존스의 건축을 통해 정착한 것이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건축의 아버지로 팔라디오를 지목했다. 이는 과도한 장식을 특징으로 하는 바로크 양식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18세기 영국의 신고전주의 건축 경향을 의미하는 이른바 팔라디아니즘Palladianism이 미국 건축을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라 천명한 셈이다. 알프스 너머의 일부 지역에서는 중세 시대에서 르네상스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바로크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로마 대약탈 이후 종교 개혁이 유럽 전역을 강타했다. 1517년 마틴 루터가 발표한 교회의 타락상이 담긴 95개조의 반박문을 시작으로 1537년 칼뱅의 개혁안까지 종교 개혁은 확산되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분리된 이 시기에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 로마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교회의 그림과 조각, 성상이 파괴되었고,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림은 곧 책이라는 명제가 종교 개혁이 일어나며 파괴되었다. 지정학적 세계관의 변화도 나타났는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신대륙 발견과 네덜란드와 동인도 간의 무역 등이 대표적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진리로 여겼던 조화의 원칙들은 개인의 취향에 의해 변주되었다. 매너리즘은 보편적 양식으로 체계화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시대의 발현으로 연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