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aissance Architecture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제국의 옛 수도, 로마에서 황금기를 맞는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럽의 변방이던 로마가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로마의 풍부한 유물과 과거의 영광은 수많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예술가들이 로마로 향했다. 로마는 그야말로 최고의 고전주의 배움터이자 중세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도 의미 있는 피난처였던 것이다. 하지만 로마에 대한 관심이 그리스 시대로까지 이어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들이 받아들인 고대 유적의 교훈은 아테네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이나 조각 장식이라기보다는 로마 제국의 완성도 높은 건축 기술과 정교한 계획, 큰 규모의 기념비적인 건축의 후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걸출한 르네상스의 장인으로 인정받는 예술가는 단연 불세출의 천재, 조각과 회화, 건축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긴 미켈란젤로일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피에타>와 <다비드>이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 개념은 현대 건축에도 적용되어, 많은 건축가들이 신념처럼 여기고 있다. 나 또한 이 개념을 가장 중심에 두고 작업하고 있다. ‘단순한 것이 더 아름답다Less Is More’를 표방한 근대 건축의 거장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작품과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에서도 이 개념을 엿볼 수 있다.
‘피에타’는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무수한 예술가들이 만든 피에타상 가운데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 입구에 있는, 1499년 미켈란젤로가 24세에 제작한 <피에타>가 가장 아름답고 유명하다. <다비드>는 미켈란젤로가 로마에서 피렌체로 돌아온 2년 뒤인 1501년에 제작하기 시작했다. 메디치 가문의 참주僭主, Tyrannos 정치에서 탈피해 시민 주도의 공화정을 채택한 피렌체의 시 위원회가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다비드를 정해 미켈란젤로에게 제작을 의뢰했다. 그렇게 로마에서 <피에타>로 명성을 얻은 젊은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다비드상을 완성한다. 참주는 고대 그리스에서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획득한 독재적 지배자를 말한다.
미켈란젤로의 회화 대표작 <천지창조>는 브라만테가 개축을 맡았던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졌다. 당시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에게 브라만테가 시기와 질투심으로 ‘너 한번 할 수 있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이 일을 맡겼을지도 모른다. 이를 소재로 만든 영화 <아거니 앤 엑스터시The Agony and the Ecstasy>도 있다. 세계 최대의 천장화인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 최초의 회화 작업이다. 최소 건물 5층 높이의 천장에 올라 이런 대작을 그려내는 일은 정말 ‘신과 같은 미켈란젤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미켈란젤로는 거꾸로 매달린 채 천장화를 완성하고 한쪽 눈이 실명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장수했다. ‘완벽한 예술가’라 할 만한 그가 인생 말기에 남긴 작품이 바로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 Piazza del Campidoglio이다. 디자인의 독창성과 공간 통일의 탁월성으로 미켈란젤로의 가장 뛰어난 건축 작품으로 손꼽힌다. 고대 로마 유적이 있는 포로 로마노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1537년 미켈란젤로가 광장의 설계를 맡았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60대였는데, 광장은 그가 설계되어 죽은 후에 완성되었다. ‘캄피돌리오’는 ‘수도’라는 뜻으로 영어 ‘Captal’의 어원이다. 따라서 이 광장에는 옛 제국의 수도를 기리는 의미 또한 담겨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주변 바닥으로 가라앉는 타원을 위치시키고, 동시에 중심의 기마상을 향해 볼록하게 솟아오르게 했다. 투시적 효과가 의도된 동적인 타원형 외부 광장이 특이한 사다리꼴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광장 바닥에 그려진 기하학적인 사다리꼴 무늬는 과거 그리스 시대의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돌, 옴파로스를 참고한 것이다. 옴파로스는 그리스어로 ‘배꼽’이라는 뜻인데, 어쩌면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를 맞아 이곳 로마가 다시 한번 세상의 배꼽, 중심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광장에 몰래 새겨 놓은 것이 아닐까.
캄피돌리오 광장은 원근법을 극복한 미켈란젤로의 설계로도 유명하다. 그는 89세에 죽기 직전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캄피돌리오 광장은 기존 르네상스 계열의 작품과는 조금은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묘하게 비뚤어진 예각의 축과 타원형은 후기 르네상스의 움직임이었던 매너리즘Mannerism 경향을 띠고 있다. 우리가 흔히 진부한 기교나 타성 등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 ‘매너리즘’ 바로 그 단어다. 하지만 이 매너리즘이 건축의 용어로 사용되면 결이 다르다. 매너리즘 경향은 훨씬 진보적이면서 새로운 사상을 도입할 수 있게 해준 양식을 탄생시켰다. 이는 바로크 경향을 암시하는 움직임이기도 했다. 이 후기 르네상스 작품은 1980년대 들어 현대 건축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대유행하던 시기에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2019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가 캄피돌리오 광장을 그대로 구현한 츠쿠바 센터(이바라키현)를 건축해 세상에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또 한 번 회자된다. 츠쿠바 센터는 인본주의 르네상스 운동을 현대 건축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 하겠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고대 그리스·로마 건축을 적용한 개념은 그리 긴 시간 이어지지는 못했다.

르네상스는 다시금 제국의 수도 로마를 세상의 중심으로 복귀시켰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1000년 동안 변방이던 로마가 다시 주목받은 것이다. 로마의 풍부한 유물과 고문헌은 르네상스의 수많은 예술가가 주목하는 대상이 되었다. 로마는 고전주의 배움터로 자리 잡았다. 이 당시 건축에서는 로마네스크의 기둥이 재해석되어 배치, 배열, 디자인 등에서 다양한 변화를 띠며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