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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원 – 2 한국 리조트 50년, 휴양의 풍경이 바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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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UM

일탈을 위한 공간 경험

인터뷰 :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건축가

한국의 예전 골프 클럽하우스는 전형적인 유형이 있었던 것 같다. 리조트 개념이 등장한 이후 형식의 변화를 체감한 시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우선 조금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클럽하우스는 리조트를 구성하는 하나의 건축 유형이고, 우리나라 리조트 문화의 중심은 오히려 콘도미니엄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휴양 콘도미니엄은 1970년대 등장해 4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당시에는 타임셰어(Time Share) 방식의 회원제 콘도가 중심이었고, 한국콘도와 같은 초기 휴양시설들이 국내 리조트 문화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대명콘도를 비롯한 대형 콘도 체인이 성장하면서 대중적인 휴양 문화가 자리 잡았다. 골프장을 중심으로 한 클럽하우스도 하나의 건축 유형으로 발전했지만, 콘도와는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내가 리조트 건축의 변화를 본격적으로 체감한 시점은 1990년대였다. 그때 등장한 개념이 바로 ‘오너십 레지던스(Ownership Residence)’​다. 그 배경에는 용평리조트가 있었다. 쌍용그룹은 1970년대부터 막대한 투자를 통해 국내 최초 수준의 종합 리조트 인프라를 구축했다. 당시에는 국내 경험이 부족해 미국 리조트 전문 건축가들의 콘셉트를 들여와 국내에서 구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던 시기에 나는 일본에서 귀국해 독립한 초기였고 쌍용그룹과 함께 새로운 방향을 제안할 기회를 얻었다. 이제는 단순한 회원제 휴양 콘도가 아니라, 국내 VVIP들이 소유할 수 있는 세컨드 하우스 개념의 리조트 주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젝트가 용평 〈더 포레스트 레지던스〉였다.

1·2차 분양이 성공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건축가의 개념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건축가들이 현대적인 건축 언어로 리조트를 제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것은 리조트 건축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는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왔다. 비발디파크를 시작으로 롯데, 한화 등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리조트 산업에 뛰어들면서 국내 리조트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다양한 리조트가 개발되었고, 그 과정에서 국내 건축가들의 역할도 크게 늘어났다.

한편 〈더 포레스트 레지던스〉의 성공 이후 수많은 건설사와 리조트 회사가 오너십 빌라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실제로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용평 〈더 포레스트 레지던스〉와 제주 〈비오토피아〉가 대표적이다. 특히 비오토피아는 불리한 입지 조건을 건축적으로 극복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소비 패턴이 크게 바뀌었다. 사람들은 고가의 세컨드 하우스보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콘도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대명콘도와 같은 회원제 리조트가 다시 주목받았다.

그 흐름이 다시 한 단계 진화한 것이 아난티와 〈설해원〉이다.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리조트라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건축의 힘과 사업주의 기획력, 운영 전략이 결합했고, 여기에 SNS를 통해 공간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시대가 더해지면서 프리미엄 리조트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설해원〉은 그 가운데서도 출발점이 달랐다. 원래는 골든비치 골프장이었던 곳을 가족 단위의 종합 리조트로 전환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이 과연 그곳까지 갈까”라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골프장이 아니라 리조트 자체가 목적지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과적으로 그 예상은 맞았고, 〈설해원〉은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것은 사업주의 역할이 컸다. 권기연 부회장과 이서영 부사장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건축가와 함께 토론하고 국내외 사례를 직접 답사하며 리조트의 방향을 함께 만들어갔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건축가가 제안할 수 있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결국 사업주의 결단이다. 두 분은 건축가의 관점과 시공사의 관점, 운영자의 관점을 균형 있게 이해하며 중요한 결정을 내려왔다. 그래서 지금의 〈설해원〉은 단순한 골프 리조트가 아니라, 예술과 문화, 휴양이 공존하는 라이프스타일 리조트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 단위가 오게 하기 위해 건축가로서 고민했던 전략은 무엇이었는가?

가장 큰 전제는 골퍼와 가족의 목적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골퍼들은 골프 자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가족 단위 고객은 골프 외에도 하루를 풍성하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원한다. 그래서 골프 리조트가 아니라 가족이 머물고 싶은 종합 리조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사업주도 처음부터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해외 리조트를 경험하며 골프와 별개로 온천을 중심으로 한 휴양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었고, 30여 년간 덕구온천을 운영하며 축적한 경험도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 온천 문화와 공간을 접했던 나 역시 그 방향에 공감했고, 프로젝트는 자연스럽게 ‘골프와 온천’​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여기에 건축이 더해야 할 역할은 분명했다.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공간적으로 완성하는 일이었다. 단순히 시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축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마운틴스테이의 입체적인 계단 공간, 중목 구조와 히노키를 활용한 재료감, 다양한 테라스와 20여 가지 객실 유형 등은 모두 방문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 되도록 의도한 장치였다. 나는 이런 건축을 ‘웰메이드 아키텍처’라고 생각한다. 콘텐츠와 프로그램, 그리고 건축적 완성도가 하나로 결합될 때 리조트의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어메니티 계획에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사업주는 객실 규모에 비해 상당히 큰 어메니티를 제안했고, 그에 필요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라이브러리 카페와 키즈카페, 온천과 면역공방, 스크린골프와 결합한 엔터테인먼트 시설, 회랑과 광장, 인피니티풀 등은 단순한 부대시설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또 하나 중요했던 것은 자연이었다. 사업주는 바다를 향한 산책로를 적극적으로 구상했고, 우리는 항공 고도 제한으로 낮게 형성된 스카이라인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했다. 마운틴스테이 뒤편에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산책길은 골프를 하지 않는 가족들도 자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중요한 장치였다.

결국 우리의 전략은 골프를 중심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 골프를 치는 사람은 물론이고, 배우자와 아이들까지 각자 즐길 거리를 찾을 수 있는 리조트를 만들고자 했다. 실제로 30~40대 가족 고객들은 “해외 풀빌라나 일본 온천을 가지 않아도 충분하다”, “골프를 치지 않아도 하루가 짧을 정도로 즐길 것이 많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전략은 브랜드였다. 골프장 시절의 ‘골든비치’라는 이름은 휴양 리조트의 정체성을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설악산과 동해를 품은 정원’이라는 의미를 담아 〈설해원〉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공간의 성격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이름이 브랜드의 방향을 바꾸었고, 고객이 이곳을 인식하는 방식도 함께 달라졌다. 다행히 사업주도 그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단이 오늘의 〈설해원〉 브랜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일반 소비자의 판단 기준은 다양하다. 건축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실제 이용객의 경험은 차이가 크다. 건축적 미와 공간 외에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요소는 무엇일지, 어떤 걸 만족시키려 했는지 궁금하다.

중요한 질문이다. 사실 이 부분은 나만의 노하우에 가깝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차이가 미세하기 때문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더 건축적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업주의 입장과 사업성을 고려하는 순간, 건축가의 의지만을 온전히 관철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수준의 타협을 할 수도 없다. 결국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이 가장 큰 고민이다.

그래서 건축적 완성도를 확보하면서도 대중과 충분히 접점을 형성할 수 있는 지점을 끊임없이 탐색한다. 예를 들어 나는 처음에 〈설해원〉을 지금보다 훨씬 미니멀하고 상징적인 조형을 지닌, 마치 ‘무소유’의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리조트로 만들고 싶었다. TV조차 없는 고요한 공간을 상상했다. 그러나 사업주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일부 요소는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했다. 마감재를 선택하는 방식에서도 서로의 접근법은 달랐다. 매 순간 사업주와 의견을 조율하며 디자인과 사업성, 대중성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도 끝까지 지켜야 할 건축적 원칙은 분명히 지키고자 했다. 나에게 이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최적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며, 그러한 선택이 결과적으로 마케팅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내가 정의한 리조트의 핵심은 ‘일탈’이었다. 대도시의 아파트 문화와 규격화된 입체 공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압박을 경험하던 사람들이 리조트에 와서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실제로 방문객들은 〈설해원〉이 쉽게 싫증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방문할 때마다 서로 다른 유형의 객실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공간 유닛은 아이들에게도 새롭고 창의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결국 방문객에게 수준 높은 건축적 경험을 선사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마케팅 전략으로 삼았다. 다양하고 낯선 공간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일상에서 벗어나는 감각을 제공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일탈’이라는 주제에 대한 하나의 건축적 해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페터 춤토르의 〈Therme Vals〉는 스케일과 공간 자체가 지닌 힘만으로도 강렬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미묘한 줄타기라고 표현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타협하지 말아야 할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설계 과정에서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고객이 아니라 사업주다. 페터 춤토르의 건축은 나 역시 무척 좋아한다. 만약 건축 그 자체, 즉 공간이나 오브제만으로도 마케팅 효과를 만들 수 있고 고객들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확신이 있다면, 사업주 역시 그런 건축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프로젝트인 만큼 사업주는 결국 투자자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건축적 실험이나 공간적 완성도만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결국 건축가는 자신의 건축적 신념과 사업주의 현실적인 판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만큼은 끝까지 지켜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아직 한국에서는 과감한 건축적 모험을 시도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뜻인가.

예를 들어 〈사우스케이프〉에서 여러 건축가들에게 과감한 기회를 줄 수 있었던 것은 사업주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사업주는 패션 사업을 통해 창의적인 작업을 이해하는 안목을 갖추고 있었고, 새로운 시도와 창의성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안목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한 건축적 시도가 결국 사업적으로도 충분한 가치와 경쟁력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설해원〉에서도 ‘어디까지 건축적인 모험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프로젝트 내내 중요한 화두였다. 사업주 역시 단순히 밸류 엔지니어링(Value Engineering)을 통해 예산을 줄이는 방향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리조트를 하나의 상품으로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며, 건축적 완성도를 높여줄 것을 주문했다. 국내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라고 생각한다. 건축가의 입장에서도 건축적 실험이 단지 건축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업적인 성과로까지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사업주와 대중, 그리고 건축이라는 세 축이 만나는 접점을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균형 속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리조트를 ‘일탈’의 공간으로 정의했다. 한국 사회에서 휴식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변화가 더욱 가속화됐겠지만, 사람들이 국내 리조트의 회원권을 구입할 때 기대하는 가치 자체도 이전과는 달라졌다고 보는가?

바로 그 지점에서 건축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건축가의 역할이 지금보다 훨씬 더 확장될 것이다. 건축가가 제안하는 새로운 공간과 건축적 경험이 소비자들에게 점점 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고, 그 자체가 리조트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역시 활동 영역이 더욱 넓어질 것이다. 휴식을 ‘일탈’이라고 정의한다면, 결국 그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은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을 다루는 전문가들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팀원들에게도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리조트 프로젝트를 한 번 제대로 경험하면 거의 모든 건축 용도를 설계해 보는 셈이라는 것이다. 주거와 상업시설은 물론이고, 숙박시설을 비롯한 서비스 산업 전반을 이해해야 한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용자의 동선을 종합적으로 계획해야 하며, 운영 방식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실제로 리조트를 경험한 팀원들은 가장 많이 배우는 프로젝트였다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리조트를 꾸준히 설계하면서 건축가로서 훨씬 폭넓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하나의 리조트 안에는 건축, 운영, 서비스, 브랜딩, 마케팅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리조트는 건축가를 가장 종합적으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중들이 이제는 건축가가 만든 공간 자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휴식과 여가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공간에 기대하는 역할과 성격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둘 다라고 생각한다. 건축가의 역할이 점차 확장되면서 건축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졌고, 동시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공간에 기대하는 역할과 성격 자체도 바뀌고 있다. 적절한 비유가 르 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당시 파리 시민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수직 주거를 제안했다. ㄱ자와 ㄴ자 평면을 조합하고, 복층의 층고를 높이고 낮추는 공간 기법을 통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주거 유형을 만들어냈다. 그 안에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상업 프로그램과 공동체 시설까지 함께 담겨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보며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세부적인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요구했을 리는 없다. 르 코르뷔지에는 사회적 책무와 공공성, 상업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민했고 그 결과 건축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하나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했다. 나는 그것이 건축가가 사회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리조트와 휴양 문화를 ‘일탈’이라고 정의했고 그 개념을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공간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객실은 물론 계단실과 엘리베이터, 복도, 테라스, 외관, 보행 동선, 휴게 공간에 이르기까지 이용자의 손끝에 닿는 모든 공간에 구체적인 건축적 장치를 담으려 했다. 예를 들어 기존 골프텔과 설해온천을 연결하는 매개 공간에는 원형의 원초적인 공간감을 부여하고 의도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일상의 공간에서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전이(轉移)의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다. 온천으로 향하는 구간은 천장고를 낮추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시선과 공간이 점진적으로 열리도록 계획했다. 마지막에 노천온천에 도착했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까지 하나의 공간 경험으로 설계한 것이다.

광장 역시 회랑을 중심으로 계획했다. 회랑을 따라 상업시설을 배치하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산책하고 머물며 서로 마주칠 수 있도록 삼각형의 공간 구성을 적용했다. 이러한 공간 경험들이 모여 리조트가 지향하는 ‘일탈’이라는 개념을 완성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서도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 경험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건축이 만들어내는 공간에서의 경험 자체가 리조트의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스터플랜도 함께 계획했는데, 초기에 설정한 비전이 궁금하다.

초기 설계 단계에서 가장 먼저 손본 것이 배치 계획이었다. 서비스 동선과 고객 동선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기존 건축물과의 관계를 고려해 시설을 적절히 집약하는 고밀 개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설해원〉은 크게 기존 골프클럽하우스와 골프텔, 그리고 새롭게 조성한 마운틴스테이와 설해온천으로 구성되는데 신축과 기존 건축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이용 동선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어지도록 계획했다.

마운틴스테이는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이용자를 위한 공간이다. 중심 시설과는 적절한 거리를 두어 독립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는 대신, 모든 객실에서 셀프 주차가 가능하도록 계획했다. 또한 가족 단위 이용객을 고려해 복층형 객실을 구성했고, 전면으로는 골프 코스와 원경을, 후면으로는 바다 산책로를 연결해 서로 다른 풍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설해온천은 리조트의 중심 시설로 계획했다. 골프클럽하우스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배치해 접근성을 높였고, 수영장과 온천, 상업시설을 하나의 타워형 콘도에 통합했다. 기존 골프텔 로비와도 직접 연결해 고객의 이동 동선을 최대한 단축했다. 여기에 호텔과 컨벤션 시설의 확장 가능성까지 고려해 단계별 개발이 가능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그 결과 골프 리조트를 넘어 가족 휴양과 기업 연수까지 수용하는 복합 리조트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 하나 중요했던 것은 주택단지 계획이었다. 사업주는 새 골프 코스 주변의 부지를 약 100평 단위로 분양하고자 했는데, 이처럼 주택 필지를 계획할 때야말로 초기 마스터플랜의 중요성이 가장 크게 드러난다. 일반적으로는 토목이나 엔지니어링 중심으로 필지를 단순하게 분할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그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골프 코스를 향해 집을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동서 방향으로 놓이게 되지만, 국내에서는 남향 선호가 강하기 때문에 실제 건축 단계에서는 배치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활용하기 어려운 마름모꼴 필지가 생기거나 토지 효율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필지를 나누는 단계부터 건축적인 관점에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주택의 베이(Bay) 계획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제 건축 배치를 검토해보지 않고서는 적절한 필지 규모를 판단하기 어렵다. 사업성만 고려하면 필지를 최대한 잘게 나누는 것이 유리하지만, 그렇게 되면 건물의 전면 폭이 좁아지고 결국 좋은 주택을 설계하기 어려워진다. 분양은 쉬울지 몰라도 완성된 주거 환경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마스터플랜은 사업성과 공간의 질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이다.

마스터플랜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골프장과 리조트의 주택단지를 계획하는 일에서는 상당한 전문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건축만 알아서는 안 된다. 분양가와 시장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고객이 어느 정도 규모의 집을 원하는지, 어떤 예산으로 접근하는지, 어떤 평면을 선호하는지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나는 이런 요소들을 수없이 시뮬레이션하며 최적의 배치를 찾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업주를 설득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한 마스터플랜이 지금도 하나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주택 단지는 분양만 하고 설계는 개별적으로 진행되는가?

맞다. 분양된 필지마다 소유자들이 각자 건축가에게 의뢰해 진행하고 있다. 저도 몇 채를 설계하고 다른 건축가들도 하고 있다. 〈설해원〉의 건축가 풀에 건축가 몇 분을 추천했다.

그렇기에 강력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작동시키고 있다. 하지만 법적인 규제가 아니다 보니 만만치 않다. 필지 계획에서 중요한 것은 건축가가 왜 이런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세우는지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 중요하다. 실제 골프 코스와 건축주들의 요구를 이해한 상태에서 주택 단지 배치를 계획하면 훨씬 효과적이다. 이것도 결국 사업주를 위한 것이다.

회원권 기반의 타임셰어와 개별 필지 분양을 병행하며 하나의 타운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이제 리조트를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복합 개발 사업으로 바꾸고 있다. 이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유닛은 다양하지만, 설계 원칙은 분명했다. 중요한 것은 객실마다 개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유닛에 머물더라도 동일한 수준의 공간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 가지 핵심 원칙을 먼저 세우고, 그 안에서 평면과 면적, 공간 구성을 다양하게 풀어냈다. 첫 번째 원칙은 ‘베이(Bay)’였다. 전망 좋은 곳에 와서 휴식을 취하는데 아파트처럼 3.5m 폭의 창으로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어떤 객실에 머물더라도 넓은 와이드 뷰를 가진 거실과 침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설계 원칙으로 삼았다. 차경을 통해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일탈’의 시작이었다.

좋은 전망을 확보하려면 전면은 넓고 깊이는 상대적으로 얕은 평면이 되어야 한다. 폭이 넓은 대신 지나치게 깊은, 이른바 ‘통통한 평면’은 지양했다. 그래서 건축 배치 단계부터 각 유닛의 평면을 함께 검토하며 계획을 진행했다. 이러한 접근은 지난 20여 년 동안 주상복합과 아파트, 오피스텔 등 다양한 공동주택을 설계하면서 축적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사비 효율도 함께 고려했다. 편복도 대신 중복도를 적용해 양측에 가장 좋은 전망을 가진 판상형 매스를 배치하고, 투베드룸의 베이를 확보했다. 구조 역시 기둥 그리드를 기준으로 6개 층의 객실을 수직·수평으로 정교하게 맞추며 공사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했다. 하지만 같은 프로그램의 객실이라도 면적과 공간 구성을 조금씩 달리해 서로 다른 공간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두 번째 원칙은 모든 유닛의 내부 마감과 가구를 하나의 디자인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6성급 호텔에서 적용하는 디자인 프로세스처럼 공간과 가구, 마감재가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공간을 눈으로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도 기억한다. 그래서 공간이 주는 첫인상은 물론 재료의 질감과 촉감까지 세심하게 고려했다. 컬러와 마감재는 전체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객실마다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미니멀한 분위기의 공간부터 다소 화려한 공간까지 다양한 취향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이러한 결과는 건축가뿐 아니라 사업주와 여러 전문가, 시공사가 같은 목표를 공유하며 현장에서 끝까지 완성도를 높인 덕분이었다.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공간의 디테일은 결국 분양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방문객의 만족과 지속적인 운영 수익을 만들어낸다는 확신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세 번째 원칙은 공간의 전이(Transition)를 치밀하게 계획하는 것이었다. 나는 객실만큼이나 객실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각 객실로 이어지는 복도 역시 하나의 공간 경험이 되도록 설계했다. 루버를 활용해 복도에 독특한 공간감을 만들었고, 마치 조용한 종교 시설로 들어가는 듯한 차분한 분위기를 의도했다. 방문객은 복도를 걸으며 일상에서 서서히 분리되고 객실 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넓게 펼쳐지는 개방감과 마주한다. 그 순간의 대비가 리조트가 지향하는 ‘일탈’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베이의 기준은 어느 정도로 설정했나?

거실은 최소 6~8m, 침실은 최소 4~5m를 기준으로 계획했다. 그러다 보니 투베드룸의 경우 전체 전면 길이가 최소 20m 정도 되는 구성이 나온다. 그만큼 넓은 전망을 확보할 수 있지만, 동시에 구조와 공사비를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생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러한 베이 구성이 하부 구조까지 일관된 모듈로 연결되는 것이다. 공사비를 절감하려면 구조와 평면이 하나의 모듈 시스템 안에서 합리적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모듈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넓은 전망을 확보하면서도 경제성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좋은 리조트 설계는 공간 경험과 공사비 효율을 동시에 해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간 경험을 풍요롭게 하는 일과 예산을 절감하는 일은 때로 서로 모순될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어떤 걸 고민했는지 궁금하다.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층수와 층고를 동시에 확보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위해 플랫 슬래브 구조를 적용했는데, 이 방식은 보가 없는 만큼 설비와 공간을 효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반면, 사전에 평면과 구조를 매우 정교하게 계획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초기 단계부터 베이와 유닛 레이아웃을 치밀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그것이 전체 설계의 완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플랫 슬래브를 적용하면 일반적인 구조 방식보다 공사비가 약 10% 증가한다. 그러나 당시 지구단위계획에는 층수 제한은 없고 전체 높이 제한만 있었기 때문에, 각 층의 구조 두께를 줄이면 같은 높이 안에서 한 개 층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객실의 천장고는 유지하면서도 사업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초기 공사비는 다소 늘어나지만, 전체 연면적과 분양 가능 면적이 증가한다는 점까지 고려해 사업비를 맞췄다. 나는 밸류 엔지니어링, 즉 VE(Value Engineering)가 무조건 공사비를 줄이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용을 조금 더 투입하더라도 사업성과 내구성, 공간의 품질이 그 이상으로 좋아진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밸류 엔지니어링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적게 쓰느냐가 아니라, 투입한 비용이 얼마나 큰 가치를 만들어내느냐이다.

또한 리조트에서는 채광과 환기가 확보되지 않는 이른바 ‘먹방’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내부 깊숙한 공간이 발생한다면, 이를 단순한 잔여 공간으로 두지 않고 색다른 공간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로 전환해야 한다. 공간적 약점을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분위기로 보완해 상품성과 분양성을 높이는 것이다. 고급 마감재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산 절감과 상반되는 결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택도, 건축가 개인의 욕심도 아니었다.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실제 마케팅과 분양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은 감각적인 주장에 머물지 않고, 공사비와 분양가, 수익성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근거로 이루어졌다. 결국 공간의 질과 사업성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계획을 통해 함께 높여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사업 영역으로 확장하면 건축 이면의 것들도 봐야 한다. 〈설해원〉의 경우 기존 골프 클럽하우스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변화를 주고자 했는가?

리조트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원칙이 있다. 초기에는 중앙에 시설을 집중하는 고밀 개발로 시작하고, 사업이 성장하면서 점진적으로 외곽으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건비가 높은 해외 선진 리조트들을 보면 대부분 이러한 중앙 집중형 배치 전략을 취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운영 효율이다. 리조트는 서비스 산업이기 때문에 관리 동선이 짧아야 한다. 시설이 분산되면 직원의 이동이 늘어나고 운영 비용이 급격히 증가한다. 서비스 관리 비용을 통제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어도 지속적인 운영은 어렵다.

〈설해원〉에서도 처음 사업주와 가장 먼저 공감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기존 골프텔과 새로 증축하는 시설을 하나로 연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건축가로서 형태적인 차별성만 강조했다면 신축 건물을 기존 골프텔과 떨어뜨려 배치했을 것이다. 그래야 신축과 기존 건물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건축적인 존재감도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존 골프텔의 로비를 리모델링해 신축 시설과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하고, 이용자가 하나의 리조트처럼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사업주도 이 생각에 적극 공감했다.

고객 동선 역시 같은 원칙에서 출발했다. 리조트에 들어온 고객은 골프를 치러 가든, 수영장이나 온천을 이용하러 가든 최대한 짧고 편안하게 이동해야 한다. 비를 맞으며 먼 거리를 걸어야 하거나, 카트나 셔틀 차량을 이용해야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면 운영 비용은 물론 고객 만족도도 함께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리조트는 중앙에서 기능을 집중시키고 그 중심을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철학을 서비스 관리 동선과 고객 동선, 운영 효율, 마케팅 전략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사업주에게 설명했다. 결국 좋은 리조트는 화려한 건축물이 아니라 운영이 잘되는 시스템 위에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국내 리조트 가운데 이러한 원칙을 놓쳐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고, 그래서 더욱 이 원칙을 지키고자 했다.

운영에 대한 고려는 건축가가 놓치기 쉬운 부분 같다. 물론 리서치를 하더라도 운영해보지 않고는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일 텐데, 이에 대한 경험은 어떻게 갖게 되었는가?

이전 프로젝트부터 지금까지 설계 단계뿐만 아니라 오픈해서 운영할 때까지 사업주와 함께 계속 모니터링한다. 설계한 곳에 직접 가서 어떻게 운영되는지 후일담도 많이 듣는다. 그러다 보니 시행착오도 많았고, 무엇이 안 되었는지 생각하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사업주들이 리뷰를 많이 해준다. 이렇게 하니 뭐가 좋은지, 또 뭐가 불편한지, 돈이 더 들어가는 부분과 덜 들어가는 부분에 대해 말이다. 그걸 놓치지 않았다. 시간 나면 내가 설계하지 않은 곳도 방문한다. 손님으로 가서 실제 작동하는 것을 보고, 모니터링도 해보고, 장단점을 살펴보다 보니 경험을 많이 쌓게 된 것 같다. 방문했을 때는 사업주의 입장, 고객의 입장, 건축가의 입장 등 꼭 세 가지 관점에서 자세히 관찰하는 편이다. 그게 다음 설계 때 반영되고 현재도 진화 중이다.

시행 착오도 많았다고 했는데, 시도했다가 아니라고 판단한 사례가 있을까?

실수라기보다는 지금도 책임감을 느끼는 프로젝트가 있다. 평창 알펜시아 에스테이트 내 〈페어웨이 빌라〉다. 이영조 소장과 함께 설계한 프로젝트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원개발공사가 골프 코스 주변에 추진한 단독주택 분양 사업이었다. 당시 나는 그 부지라면 100세대 미만으로 계획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주택 사이의 충분한 이격거리와 조경 공간을 확보해야 골프장이라는 입지의 장점을 온전히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용평 〈더 포레스트 레지던스〉가 숲속의 집이라는 개념이라면, 알펜시아는 넓은 골프장을 품은 주택이라는 점이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도 더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끝내 사업주를 설득하지 못했다. 이것이 건축가의 한계이기도 하다. 강원개발공사 입장에서는 공공사업의 특성상 사업성을 극대화해야 했고, 결국 260세대를 배치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주택 간격이 지나치게 좁아졌다. 당시 그 부지는 지구단위계획상 특구로 지정되어 골프장 안에 숙박시설과 주택을 조성할 수 있는 국내에서도 매우 드문 입지였다. 잘 계획했다면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수준의 골프장 조망형 주거단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분양이 완료되어 입주까지 이루어졌다. 하지만 분양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졌고, 그 과정에서 사업주는 적지 않은 금융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나는 그 결과를 보며 당시 조금 더 밀도에 대한 판단을 끝까지 관철하지 못했던 점을 자주 떠올린다. 건축은 결국 공간의 질과 사업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인데, 그 프로젝트는 그 균형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도 마음 한편에 책임감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내 이름을 걸고 세상에 나온 건축이라는 점에서 더욱 아쉽고, 늘 교훈으로 되새기는 프로젝트다.

분양 사업에서는 마케팅 언어와 건축 언어가 굉장히 다르다. 소비자를 고려하고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고민해서 나온 단어일 텐데, 왜 시장의 언어와 건축 언어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의 통과 의례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업성과 작품성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영화나 음악을 봐도 그렇다. 포털사이트에서 평점이 5점도 되지 않는 영화가 천만 관객을 모으기도 하고, 칸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작품이 100만 관객에도 미치지 못하기도 한다. 영화계라고 해서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의 고민이 없었겠는가. 음악도 마찬가지다. BTS를 세계적인 그룹으로 만든 방시혁 프로듀서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이다. 1980년대만 해도 아이돌이나 댄스 음악은 음악성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건축도 결국 같은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건축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아직은 그 접점에 충분히 도달하지 못했다. 상업시설을 설계한다고 하면 공공성이 부족한 건축으로 바라보거나, 공공 건축만이 건축적 가치가 있는 것처럼 평가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상업 건축은 건축계의 담론에서 쉽게 배제되고, 자본과 거리를 둔 이야기만 건축으로 인정받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우리 건축계가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러한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건축가들이 대규모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개발회사 역시 이를 분양 마케팅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부작용도 적지 않다. 그러나 건축과 개발, 작품성과 사업성은 반드시 대립하는 개념은 아니다.

뉴욕 맨해튼에서 진행되는 최근의 초고층 주거 개발만 보더라도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건축적 완성도를 높이는 동시에 그것을 적극적인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분양을 위한 언어와 건축을 위한 언어는 분명 다르지만, 두 언어가 만나는 지점은 존재한다. 오히려 그 접점을 찾는 것이 오늘날 건축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기생충〉이 가장 영화적이면서도 가장 상업적인 작품이었듯, 건축 역시 작품성과 사업성이 충분히 함께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용평 〈더 포레스트 레지던스〉의 성공이 ‘분양 사업을 다룰 수 있는 건축가’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계기였다고 볼 수 있을까? 설계뿐 아니라 사업 자체를 풀어내는 역할을 기대받게 된 출발점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다만 그 사실을 당시에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오히려 최근에 와서야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당시에는 〈더 포레스트 레지던스〉 이후 관련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도 않았고, 그런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경험도 부족했고 큰 흐름을 읽는 인사이트도 부족했던 것 같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건축을 했을 뿐이다.

오히려 그 질문의 답은 최근 10~15년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건설사와 시행사, 디벨로퍼를 비롯한 다양한 부동산 개발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내가 해온 프로젝트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현장에서는 “양진석에게 가져가면 해결해준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해결’은 단순히 건물을 설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업 아이디어를 만들고,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분양 전략까지 함께 고민해주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건축은 그 모든 것을 구현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일 뿐이다.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좋은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면 지금은 사업성과 운영, 콘텐츠와 브랜드까지 함께 이해하고 종합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나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건축의 역할을 더 넓게 이해하고, 건축을 통해 프로젝트 전체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하고 있다.

컨설팅이겠다.

거의 컨설팅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금 민망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업주들이 제게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설계가 아니라 ‘전략 디자인(Strategy Design)’이다. 강의를 할 때도 늘 이야기한다. 건축이 환경 디자인(Environment Design)에만 머물면 재미가 없다고. 오히려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건축가 스스로 제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공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환경 디자인을 넘어 전략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략 디자인에는 공간의 미학도 포함되고 건축적 완성도도 포함된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업주의 사업 전략과 수익 구조, 운영 방식, 콘텐츠, 브랜드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디자인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름답기 때문에 선택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왜 그런 공간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건축적 완성도와 사업성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내게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두 가지는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조금 독특한 위치에 있는 건축가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아파트와 주상복합, 상업시설처럼 사업성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건축이나 이른바 아틀리에 건축, 작가주의 건축이 추구하는 건축적 가치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나는 그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건축적 완성도와 사업성을 함께 만족시키는 접점을 찾는 일을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큰 예산을 다루는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줄이는 건축가를 찾게 될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경험치들이 쌓여온 것 같다.

맞다. 돌이켜보면 늘 그렇게 일해온 것 같다. 무엇보다 항상 ‘내가 사업주라면 어떻게 판단할까’라는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바라보려고 했다. 건축은 결국 사업주의 결정을 공간으로 구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해답을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설해원〉 사업주와도 평소 서로를 ‘동지’라고 부른다. 건축 이야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사업 전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상의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른 리조트 콘도미니엄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현장 감리에 나가 기술과 디자인을 검토하는 것은 물론, 적정 분양가를 논의하는 회의나 마케팅 전략 회의에도 함께 참석한다. 건축가의 역할이 도면을 완성하는 데서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사업주는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외롭다. 그래서 저는 건축가는 설계자이기 이전에 사업주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함께 판단을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함께 완성해가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개발과 분양 사업에서 건축가가 특히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너무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 기본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첫째는 공사비다. 건축가는 설계와 디자인만이 아니라 공사비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 설계 단계에서 조금만 더 고민하면 사업주는 훨씬 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좋은 설계는 더 많은 비용을 쓰는 설계가 아니라 필요한 곳에는 투자하고 불필요한 비용은 줄이는 설계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분양과 마케팅의 관점이다. 분양 프로젝트라면 건축 안에 마케팅 전략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 한다. 공간의 구성과 동선, 조망, 프로그램, 브랜딩까지 모두 분양 경쟁력과 연결된다. 건축은 마케팅과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셋째는 지속 가능성이다. 건축은 준공되는 순간보다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하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디테일과 유지관리의 효율성,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유지되는 공간을 고민해야 한다. 막 완공했을 때만 아름다운 건축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도 잘 나이 드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서비스 운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호텔과 리조트, 상업시설은 서비스 산업이다. 직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동선이 발생하는지를 건축가가 이해해야 한다. 설계할 때 차량 동선과 보행 동선은 꼼꼼하게 검토하면서도 정작 서비스 관리 동선은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운영 효율은 결국 이러한 보이지 않는 동선에서 결정된다. 서비스 동선을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하느냐가 운영 비용과 고객 경험을 좌우하고 결국 사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