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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로마 건축의 대표 주자, 판테온 신전과 콜로세움

by.

양진석의 유럽 건축사 수업

유럽 건축사

판테온 신전. 기원전 27년에서 25년 사이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양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웠으며, 하드리안 황제가 재건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다. 그리스 건축의 페디먼트와 코린트식 기둥 양식을 계승하였으며 전체적으로 그리스 시대보다 실용적이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는 장인을 노예처럼 취급했으나, 로마는 건축을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하며 장인들을 모아 해외로 보냈다. 로마 건축이 널리 퍼질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러한 장인들의 손에서 탄생한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판테온 신전이다. 판테온 신전은 로마 문화 절정기에 나타난 진보한 건축물이다. 현재의 모습은 기원전 27년에 아그리파가 창건했다가 불에 타 없어진 것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2세기에 재건한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이 아테나를 모신 신전이라면 판테온 신전은 모든 신을 위한 만신전이다. 판테온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리스어로 ‘모든 신’이다. 종교적인 속박에서 자유로웠던 마지막 세기라 할 수 있는 기원전 2세기의 종교적 관심이 반영된 건축물이라 말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공간인 이데아를 은유한 건축으로, 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신과 같은 존재감을 지닌 신성한 것을 빚어낸, 영혼의 모태와 같은 곳이다. 로마 건축물 중에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고 평가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판테온 신전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7세기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로, 르네상스 시대에는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화가 라파엘로 산치노Raffaello Sanzio가 이곳에 묻혔다. 현재 판테온 신전은 가톨릭 교회로 사용되
며 미사, 집전, 결혼식 등이 열리기도 한다.

판테온 신전의 전면을 보면 그리스 건축에서 고안한 페디먼트와 코린트식 기둥 양식이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웅장하고 견고한 건물 외관은 그리스 시대의 화려함보다는 실용적이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파르테논 신전은 건물의 네 면을 모두 중요하게 여겨 외관 계획을 했지만, 판테온 신전은 ‘전면’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또 로마 건축의 상징인 돔 건축이 신전 뒤로 배치되었다는 점에서 파르테논 신전과 여러 가지 면에서 확연히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판테온 신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로툰다Rotunda라 부르는 돔 부분이다. 직경 43.3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돔은 특히 위쪽에 원형으로 개방된 최상부가 인상적이다. 직경 9미터인 이 구멍 ‘오쿨루스Oculus’는 판테온 내부로 쏟아지는 태양 빛을 상징한다.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오쿨루스는 매우 불가사의하다. 돔의 특성상 최고점에 힘이 몰릴 수밖에 없는데, 그 지점에 구조적으로 가장 단단한 자재를 적용하지 않고(일반적으로 아치에서는 키스톤을 사용함), 오히려 구멍을 뚫어서 한 차원 높은 구조적 미학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판테온 신전을 계기로 건축물에 대한 시선이 ‘외부에서 내부’로 방향 전환되었다고 본다. 판테온 신전의 등장으로 로마 건축이 본격적으로 공간 계획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후 르네상스 건축의 대명사 피렌체 대성당의 돔Dome(반구형 지붕이나 천장)을 설계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1377년~1446)가 판테온 신전에서 영감받았다는 말도 있다.

콘크리트를 사용한 거대한 판테온 신전은 로마 건축을 대표하는 구조물로, 로마인의 강인함과 실리적이고 상식적인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때 시멘트와 물을 섞어서 만든 콘크리트가 돌과 돌을 붙이는 접착제로 발달했다(현대 건축에서의 철근 콘크리트는 콘크리트 안에 철근을 넣은 구조체로, 20세기 초에 개발되었다). 이렇게 콘크리트의 발명과 모르타르나 철물의 이용으로 시공 기술이 발전했다. 매우 장식적이고 호화로운 느낌을 주는 아치Arch와 볼트Vault 등은 주로 개선문같이 화려한 건물에 사용되었다. 그리스 건축에서도 아치의 조형 개념은 존재했으나, 로마 시대에 본격적으로 아치라는 건축 형태가 등장했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로마인들은 정치적・군사적 강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대규모 건축물을 적극적으로 건설했다. 구조・시공 기술의 발달로 대규모 공간을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 건축 역사상 본격적으로 내부 공간을 형성한 것은 로마 건축이 최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로마 건축은 로마인의 특성과 필요에 맞게 매우 체계적이고 기능적이었다. 이러한 건축 개념을 수립함과 동시에 기술적인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도로, 수로, 콘크리트, 석재 기술 등에 있어서 기술적인 발전도 끊임없이 도모했다. 로마 건축이 현대 건축의 초석을 다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하나 ‘로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 바로 콜로세움Colosseum이다. 콜로세움은 스타디움Stadium 건축의 시작이다. 건축 설계에서 스타디움 방식이라고 하면, 앞사람의 머리 위에서 무대나 경기를 조망할 수 있는 좌석 방식을 말한다. 지금의 야구장도 이 콜로세움에서 비롯되었다. 그리스 건축에서도 스타디움 형식의 야외 극장을 많이 볼 수 있다. 거대한 원형 경기장이었던 콜로세움은 로마 건축의 대표작으로 화려한 양식과 탁월한 건축 기법,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당시의 검투사들은 이곳에서 혈투를 벌이고, 시민들은 그것을 보면서 유흥을 즐겼다고 한다. 수 세기 동안 여러 차례 개축된 콜로세움의 내부 수용 인원은 5만 명에서 최대 8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중심 길이는 188미터, 외벽은 48.5미터, 둘레는 400미터이며, 80개의 아치와 상부에 조성된 3층 아케이드가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경기장인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은 약 7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해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다.

사실 현재의 콜로세움에 가보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의 외관은 원래 모습에서 많이 훼손된 상태다. 예전에는 수로까지 연결해서 수중전까지 연출할 정도로 중앙 무대의 구조는 대단했다. 물론 그 흔적만으로도 대단했던 위용을 떠올릴 수 있다. 트래버틴 대리석으로 마감해 상당히 화려한 외관을 자랑했다. 트래버틴 대리석은 현대 건축에서도 외장재와 내장재로도 자주 쓰일 만큼 유명 이탈리아산 대리석이다. 상상해 보라. 원형의 큰 경기장 외관에 번쩍번쩍 빛나는 트래버틴 대리석이라니, 이 경기장은 분명 로마의 랜드마크로 뽐냈을 것이다. 최근 <글래디에이터2> 영화가 개봉되면서 콜로세움 광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건축은 물론이고 검투사 대결 장면과 각종 수중전 및 행사 등이 연출되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제대로 고증해 연출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러분들도 꼭 한번 보시길 권한다.

건축 스타일도 살펴보자. 외벽을 빽빽하게 감싸고 있는 기둥을 자세히 보면, 3층으로 쌓은 외벽의 기둥 양식이 전부 다르다는 것을 금세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의 도리스・이오니아・코린트 양식의 기둥을 모두 사용했는데, 로마의 건축술이 그리스의 것을 이어받은 동시에 자유자재로 그 양식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시 로마는 모든 양식을 한꺼번에 적용할 정도로 진취적이고 과감했다.

트라야누스 광장과 바실리카도 대표적인 로마 건축물이다. 트라야누스 시장Mercati di Traiano은 2층 규모의 주상복합 건물로, 트라야누스 광장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다. 중심부 넓이는 가로 90미터, 세로 114미터로(약 1만 제곱미터), 대리석 원주로 구성된 삼면 벽면이 있다. 트라야누스 광장을 통해 로마의 수도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삶의 모습을 비롯하여 로마의 과거를 엿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이라고도 불리는 트라야누스 시장의 아케이드는 다층 구조로 지어졌다. 그 안에 관공서와 주택까지 있는데, 복합적으로 구성된 수직 도시인 셈이다. 이를테면 현대의 주상복합아파트와 같은 개념이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현대 아파트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을 보면 이러한 수직 도시 개념을 적용했다고 보인다. 주거는 물론이고, 각종 생활 편의 시설을 전부 건물 안에 배치했다. 실로 대단한 공간 감각이자 기획이 아닌가.

로마에서도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같은 건물이 발견된다. 유럽 건축사를 거시적으로 보여주는 바실리카는 법정 등 공공기관으로도 활용되었는데, 회랑으로 둘러싸인 넓고 긴 중심 공간은 모임 장소로 활용되며 마을의 포럼(시장)에 자리했다. 신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도 바로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교회로 활용되었고, 이후 로마네스크Romanesque 교회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가대를 위한 공간과 예배의 극적인 측면을 위해 제단부 공간이 신설된 것도 특징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나라 명동 성당의 긴 평면 공간이 바로 바실리카인 셈이다. 바실리카는 이후 시대를 지나며 계속 진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