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aissance Architecture
피렌체에서 시작되고 로마에서 정점을 맞은 르네상스라는 큰 흐름은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옮겨 간다. 로마의 르네상스가 쇠퇴하고, 1527년 독일과 스페인이 로마를 침략했다. 이 카를 5세의 로마 대약탈Sacco di Roma은 교황권의 몰락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중심지로서의 로마 위상을 약화시켰다. 베네치아를 이주 도시로 주목받게 했다. 베네치아는 정치적·종교적으로 독립적이고 안전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9세기에서 12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던 도시 국가였다.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교황청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기 때문에 문화와 예술이 자율적으로 발전하면서 르네상스 말기 각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베네치아는 5세기에 세워진 ‘물의 도시’로, 118개의 섬이 약 400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지중해 국가와 동방 국가들과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중개 무역의 도시이기도 했다. ‘알테르 문디Alter mundi’, 즉 ‘세상의 다른 곳’이라고 불렸고, 베네치아 사람들은 스스로 ‘세레니시마 리포블리카Serenissima Repubblica’, 즉 ‘고귀한 공화국’이라 칭했다.

그 수많은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건축가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하나 꼽으라면 역시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1508~1580)이다. 팔라디오는 베네치아 공화국 출신으로,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 건축물을 해석한 저서 《건축4서》를 집필하면서 당대 건축의 권위자가 되었다. 팔라디오의 대표작은 단연 베네치아 서쪽 비첸차에 위치한 교외의 주택, 빌라 로톤다 Villa La Lotonda(1569)이다. 빌라 로톤다는 기존 로마 스타일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데, 심지어 이름도 고대 로마 판테온 신전의 다른 이름인 ‘산타마리아 로톤다’에서 빌린 것이다. 교외 주택에 과감하게 로마 건축을 시도한 것으로, 판테온 신전을 재현한듯 명확하고 질서 정연하게 똑 떨어지는 구조와 완벽한 대칭이 고전주의의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로마 스타일의 페디먼트와 기둥 양식도 그대로 차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빌라 로톤다는 건물의 내부 어디에서도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또한 건물의 네 면을 모두 동일한 모습으로 설계했는데, 이러한 설계가 가능했던 이유는 교외에 살짝 솟은 언덕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팔라디오는 《건축4서》에서 “이 빌라를 유명하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는 입지 조건이 훌륭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아름다운 조망을 여러 방향에서 즐길 수 있도록 사방에 로지아Loggia를 만들었다.”라고 기술했다. 로지아는 한쪽 또는 그 이상의 면이 트여 있는 방이나 복도를 말한다.
무엇보다 교회나 수도원이 아닌 주택 건축임에도 지붕에 돔을 얹어 놓은 모양이 인상적이다. 신을 모시는 예배당이 아닌, 그저 사람이 사는 공간에 교회에서나 볼 법한 돔을 가져다 놓았다는 것은 팔라디오가 여러 고대 로마 건축물을 한데 아우르는 동시에,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며 우주의 중심이라는 르네상스 정신을 건축물에 구현해 놓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을 꼽으라면 정치적·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하던 산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일 것이다. 예전에 한때 대홍수로 이 광장에 물이 가득 차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베네치아에서는 산마르코 광장을 그저 ‘광장la Piazza’이라고 부른다. 산마르코 광장은 피아제타 광장과 함께 베네치아의 사회적·종교적·정치적 중심지를 형성했고, 보통 하나처럼 여겨졌다. 거대한 아치와 대리석 장식이 인상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조각품들이 중앙 정문을 감싸고 있다. 좌측에는 광장의 북쪽을 따라 프로쿠라티에 베키에Procuratie Vecchie라 불리는 긴 아케이드가 있는데, 이 아케이드를 구성하는 건물들은 16세기 초에 지어졌다. 1층은 상점과 식당이 차지하고 있고, 2층은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이 아케이드의 끝에서 다시 왼쪽으로 돌면 광장의 서쪽 끝을 따라 다시 아케이드가 이어진다. 이 아케이드는 1810년 나폴레옹이 재건축한 것으로, ‘나폴레옹 동棟’이라는 뜻의 ‘알라 나폴레오니카Ala Napleonica’라고 불린다. 이곳의 상점가 뒤쪽에는 과거 왕궁으로 이어지는 예식용 계단이 존재하는데, 현재는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의 입구로 쓰이고 있다. 왼쪽으로 다시 돌면 아케이드가 광장의 남쪽으로 계속 이어지는데, 이쪽의 아케이드는 프로쿠라티에 누오베Procuratie Nuove(새 프로쿠라티에)라 불린다. 이 프로쿠라티에 누오베는 자코포 산소비노Jacopo Sansovino가 16세기 중엽에 설계했지만, 그의 사후 1582년부터 1586년까지 빈첸조 스카모치Vincenzo Scamozzi가 변경된 형태로 일부 건축했고, 그의 제자 발다사레 론게나Baldassare Longhena가 1640년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이 건물은 다른 아케이드처럼 상점가로 꾸며져 있는데, 여기에는 현존하는 카페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베네치아에 갔을 때 선글라스를 끼고 산마르코 광장의 이 카페에 앉아서 베네치아를 만끽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베네치아의 산조르조마조레 성당Basilica di San Giorgio Maggiore은 후기 르네상스 건축의 대표작으로,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남쪽 해상에 떠 있는 산조르조섬에 위치하고 있다. 팔라디오가 설계했으며, 1566년부터 1610년까지 건축되었다. 한편, 정치적 갈등으로 잠시 베네치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가 피렌체로 돌아온 후 도서관을 건립하기로 결심했는데, 그 도서관이 바로 메디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Biblioteca Medicea Laurenziana이다. 이 과정에서 베네치아의 건축 미학이 피렌체에 영향을 미쳤다. 이 도서관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그 밖에 팔라디오의 대표작으로 일레덴토레Il Redentore 성당도 빼놓을 수 없다. 얼핏 보면 산조르조마조레 성당과 유사한 형태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를 지닌다. 일레덴토레 성당은 1575~1576년에 맹위를 떨치며 유행했던 페스트에서 치유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건축되었다. 레덴토레Redentóre(구원자)에게 봉헌하는 교회로 주데카 운하의 남쪽에 세워졌고, 르네상스 시대 교회의 표준이라고 볼 수 있다. 고전적인 단아함과 우아함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산조르조마조레 성당과 흡사하다. 고딕 교회와는 달리 교회 정면을 신전의 모습으로 변형시킨 것이 특징이다. 겹침이 더 복잡하고 교묘하게 이루어져 있고, 전면에 있는 커다란 바깥 계단 때문에 높은 주대를 사용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잘 정리된 파사드로 만들어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