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thic Architecture
고딕 건축은 파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9세기 이후 분할된 서프랑크, 동프랑크, 남프랑크 중 현재 프랑스의 뿌리가 되는 곳은 서프랑크 왕국이다. 12~15세기의 중세 파리는 20만 명의 인구가 사는 제법 큰 도시였다. 무역업이 성행하고, 시장과 장인이 생겨나 길드가 형성됐으며, 부가 축적되면서 은행이 생겼고, 파리 전체의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었다. 파리 북쪽으로는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었고, 남쪽으로 가면 센강, 시테섬, 바스티유 등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특히 시테섬에는 궁전이 위치했다. 이후 14세기 샤를 5세 때 궁전을 이전했고, 궁전 자리에는 헌법재판소가 들어섰다. 궁전 반대편에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서쪽 성벽의 외곽에는 루브르 요새가, 시테섬 너머에는 파리 최초의 대학인 소르본대학이 자리했다. 성곽 안에는 다양한 도시 시설, 대성당, 궁전, 재판소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거주 지역이 형성되었다.
앞서 잠깐 이야기한 영국 솔즈베리 대성당의 정식 명칭은 ‘솔즈베리의 동정 성모마리아 주교좌 성당Cathedral of the Blessed Virgin Mary, Salisbury’으로, 잉글랜드 성공회의 대성당이다. 첨탑의 높이가 123미터나 되는데, 영국의 대성당 중 가장 높다. 솔즈베리 대성당은 1220년부터 1258년 사이에 건설되었고, 1386년에 제작되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계식 시계로도 유명하다. 참고로 흔히 주교좌 성당主敎座聖堂이라고 불리는 성당은 가톨릭 교구의 중심이 되는 성당을 말한다.
샤르트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도 고딕 성당의 대명사로 불린다. 1145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1194년 화재로 상당 부분 소실되어 12세기 말부터 13세기 초 사이에 재건되었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새로 개발한 기술을 도입했는데, 이 기술 덕분에 네이브에 여러 개의 커다란 창문을 만들 수 있었다. 총 2,000제곱미터가 넘는 면적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은 장관을 연출한다. 빛이 들어올 때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선명하게 빛나면서 석재의 흰빛과 대조를 이룬다. 대성당 안쪽 길이가 130.2미터, 중앙 네이브의 너비가 16.4미터, 높이가 36.5미터에 이른다. 멀리서 바라보면 이 성당에는 106미터 높이의 ‘옛 탑’, 115미터 높이의 ‘새 탑’이라고 불리는 2기의 탑이 있다. 샤르트르 대성당은 중세 시기에 채색을 했지만, 지금도 많은 부분이 금빛으로 빛난다.
아미앵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Amiens도 대표적인 고딕 성당으로 꼽힌다. 파리 북쪽으로 약 120킬로미터 떨어진 피카르디주에 위치한 아미앵 주교좌가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대성당이다. 프랑스에서 완성된 대성당 가운데 가장 높은 성당이다. 돌을 깎아 만든 둥근 천장이 있는 회중석은 높이가 42.30미터에 이른다. 프랑스의 대성당 가운데 내부 공간이 가장 넓은 성당으로, 체적은 20만 세제곱미터나 된다. 아미앵 대성당은 1220년에서 1270년경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다. 현재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원래의 채색이 많이 손실되었으나 여전히 아름답다.
독일을 대표하는 고딕 성당은 쾰른 대성당Kölner Dom, Hohe Domkirche St. Peter으로, 쾰른 주교좌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높이는 157.38미터로, 울름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 성당이다. 고딕 양식으로 설계되었지만, 오랜 건축 기간을 거쳐 결국 1880년에 네오고딕 양식으로 완공되었다. 13세기 중세 시대에 착공되어 19세기가 되어서야 완공된 것으로 유명한데, 완공 이후 1884년 워싱턴 기념비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라인강변 언덕 위에 지어졌으며, 대성당 주변에는 쾰른 중앙역과 호엔촐레른(1415년부터 1918년까지 존속한 독일의 왕가) 철교, 루트비히 박물관, 로마-게르만 박물관 등이 있다. 많은 예술·역사 학자는 쾰른 대성당을 두고 후기 중세 고딕 건축물의 보석이라고 표현했다. 개성 있는 거대한 두 개의 탑 때문에 웅장한 외양을 갖추고 있는데, 원래 이 두 개의 탑은 1814년에 설계가 변경되어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것으로, 19세기 산업 혁명으로 발명된 증기기관 덕분에 가능했다. 두 개의 탑을 포함한 서쪽 전면의 거대한 면적은 무려 약 7,100제곱미터에 달한다. 원래 건축 재료인 조면암의 색 때문에 하얀색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과 매연 때문에 검게 변했다. 쾰른 대성당 건설 조합은 대성당을 보수하고 변색을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편, 로마와 비로마의 건축 양식을 동시에 지닌 고딕 건축물도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로 이탈리아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밀라노 대성당이다. 이탈리아는 초기에 고딕 자체를 그리스· 로마 건축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상당히 무시한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고딕 건축을 찾아보기 힘든데, 밀라노와 베네치아는 무역 도시여서 이탈리아 안에서도 비교적 고딕 건축을 받아들이기 쉬운 측면이 있었다. 밀라노 대성당은 매우 화려한 고딕 양식을 보여주며, 수많은 첨탑과 함께 그리스·로마의 바실리카 평면, 페디먼트, 기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밀라노 대성당은 14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계획되어 19세기에 주요 건축 부재들의 조각이 완성되었다. 밀라노 대성당은 고딕 이전의 양식이 혼재된 이탈리안 고딕의 완성이라 여겨진다.
독일은 프랑스 양식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탈리아와 영국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해 건축했다. 고딕 양식은 정교하고 높은 수준의 건축 기술을 필요로 했는데, 성당 하나를 짓는 데에 적게는 30년부터 길게는 500년까지 걸렸다. 중세 유럽을 ‘대성당의 시대’라고도 할 만큼 중세에는 성당이 많이 지어졌고, 이것이 바로 유럽에 고딕 양식이 널리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대성당의 시대는 유럽 전역에 걸쳐 활약한 석공들의 전성기라고도 할 수 있다. 고딕 같은 이런 비로마 양식의 유행은 14세기 후반 그 열기가 식고, 유럽은 다시 찬란했던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는 위대한 건축물을 지어 올리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