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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슬람 문화를 중세 유럽으로 유입시킨 십자군 원정과 신학의 영향

by.

양진석의 유럽 건축사 수업

유럽 건축사

Gothic Architecture

이 당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로 십자군 원정이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성지 순례단 보호 혹은 성지 수복이라는 종교적 명분에서 출발한 십자군 원정의 표면적인 목적은 종교적인 것이었지만, 왕권과 교권 유지를 위한 정치적 선택이기도 했다. 십자군 원정은 중세 중기와 후기를 관통하는 사건으로, 교황이 왕의 통치권을 인정해 주는 대신 왕은 십자군 원정을 떠나야 했다.

예루살렘과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이 탄생한 로마,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곱의 유골이 안치된 스페인 산티아고는 세계 3대 성지다. 이 중 십자군 원정대가 가장 선호한 곳은 이슬람 국가에 복속된 예루살렘이었다. 기사단 파견은 단순한 성지 순례가 아니라 예루살렘 수복을 노리는 군사적 행동이기도 했다. 2세기에 걸쳐 네 번의 대규모 원정이 있었으며, 한 번 원정을 떠나면 3~4년 정도가 소요되었다. 원정은 육로와 수로를 이용했고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십자군 원정은 지방 영주들의 세력을 약화시켰고, 결과적으로 왕권을 강화시켰다. 또한 사회가 십자군 원정으로 고통을 받게 되자,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일탈을 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내세우는 대의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십자군 원정은 이슬람 문화가 중세 유럽 사회로 유입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년 동안 진행된 십자군 원정으로 인해 이슬람 문화가 유럽 사회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건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뿌리는 사실 같으며, 이슬람교는 구약성경을 인정한다.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은 물이 부족한 사막 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에는 건축에 관한 전통이 없다. 종교적 건물인 모스크는 뾰족한 돔 형태를 지니며, 비잔틴 문화에 영향을 받은 이후 변형을 거쳐 완성되었다. 이후 잘 알려진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이슬람 왕국의 궁전 알람브라Alhambra도 마찬가지다. 이 궁전은 13세기에 창건되어 14세기 말에 완성되었는데, 이슬람 예술의 정점을 나타내는 대표적 이슬람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건축 양식은 17세기에 지어진 인도의 타지마할에서 그 정수를 이루며,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과 독창성을 잘 보여준다.

고딕 시대의 사회적 배경에는 신학과 문학의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에는 신의 존재와 보편적인 개념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신학이 지적 탐구의 결과로 논리적 증명이 가능한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받았다. 당시에는 스콜라 철학과 교부(중세 신학자) 철학이 발달했다. 교부 철학은 플라톤, 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지각적 능력, 즉 이성을 통해 절대적 진리인 신을 파악하고 증명할 수 있다고 여겼다. 또 신앙과 이성의 위계에 따라 두 철학적 조류를 분류했다. 문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발전이 있었다. 특히 단테의 《신곡》은 중세 문학의 정점이자 차세대 문학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새로운 건축 양식에 대한 요구도 확산되었다. 구조와 미학뿐만 아니라 의미까지 더해진 도시의 대성당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로마네스크의 경직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고딕 양식은 스콜라 철학이 추구하는 신앙과 이성의 합리적 조화가 발현된 모습이었다. 교부 철학의 절대적 신앙의 태도는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발현되었는데, 로마네스크가 고정된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고딕 양식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다 보니 로마네스크 양식은 기교나 장식 등을 상대적으로 배제했지만, 고딕 양식은 형식적인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했다. 스콜라 철학의 대부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에 입각해 미의 조건을 정의했다. 바로 ‘모든 사물에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교회 자체는 하나님의 집이며 새로운 예루살렘의 상징이 되었다. 건물의 높이나 폭도 엄격한 비례에 따른 미학 기준에 의해 결정되었다.

●●● 코뮌 도시 형태. 진정한 의미의 중세 도시 ‘코뮌’은 도시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출현했다. 중세 도시들은 고대나 근현대 도시들에 비해 규모가 작다(5천 명, 3~4만 명). 베네치아, 피렌체, 제노바, 밀라노, 나폴리 등 5대 도시의 인구는 10만 명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