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zantine Х Romanesque Architecture
로마 제국의 쇠퇴와 멸망으로 고트족이 이주하면서 남부 러시아와 서부·남부 유럽에 새로운 예술 형태가 전파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로마네스크는 유럽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 이후 12세기 중엽에 고딕이 출현할 때까지의 건축 양식을 말한다. 1818년 드 제르빌이 로마풍 또는 로마 건축 양식을 변용하여 발전시켰다는 의미가 담긴 ‘romanico’, ‘romanisch’라는 말을 쓴 데서 비롯되었다.
18세기 말까지 존속했던 신성로마 제국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독일 동북부에 이르는 방대한 제국이다. ‘로마 게르만’ 또는 ‘독일’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751년 야만족 최초의 국가가 세워졌는데, 샤를마뉴Charlemagne, 즉 카롤루스 1세 마그누스가 프랑크 왕국을 통일하며 이루어졌다. 샤를마뉴는 현재의 독일과 프랑스를 아우를 만큼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사를마뉴가 814년 사망한 이후 왕국의 분열이 가속화되었다. 843년 베르샤 조약에 의해 동프랑크·서프랑크·중프랑크 세 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는데, 이는 각각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모태가 된다. 바이킹족과 노르만족, 동방의 이슬람 세력 등이 유럽의 서쪽을 호시탐탐 노리던 시기, 서유럽의 분열과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그리스도교가 확장된다. 동방으로 향하는 순례 열풍이 불기 시작하고, 십자군 전쟁은 왕과 교황의 밀접한 공생 관계 때문에 더욱 확대된다. 왕권을 얻기 위해서는 교황의 인가가 필요했는데, 지속되는 원정 때문에 몰락하는 왕가가 속출했다. 영주와 기사, 노역자 등 남자들이 동방으로 떠나면서 여성과 아이들은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서로마가 멸망한 후 여러 왕국의 전쟁과 약탈로 인해 건축술의 발전이 다소 더디게 진행되다가 9세기 초, 프랑크 왕국을 기점으로 점점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1~12세기 동프랑크 왕국과 서프랑크 왕국을 중심으로 건축 양식이 발전했는데, 그리스도교를 정신적 기반으로 한 통일성을 가진 유럽 세계가 조성되던 시기였다. 교회와 수도원의 독립성이 사회에 영향을 미쳤고, 영주나 농부가 할 수 없는 일을 성직자들이 담당했다. 이 당시에는 종교 활동 이외에도 인문·과학·예술에 대한 교육과 연구가 활발했다.
로마네스크는 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중세의 시작부터 중세 중기에 발전한 건축 양식이다. 팍스 로마나로 이룩했던 평화가 붕괴되면서 중세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게르만족이 서유럽의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부상해 문명화를 이루면서 사회 시스템이 안정되었다. 이때는 그리스 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아 로마 가톨릭과 결탁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교회가 형성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황과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려면 수도원과 예배당 신축이 지배 세력의 의무였다.
로마네스크는 그리스·로마 건축을 계승하여 발전했다. 양식의 발전은 교회 건축의 발전과 동일한데, 로마의 바실리카를 원형으로 하여 성과 요새의 폐쇄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로마의 바실리카는 추후 비잔틴 양식으로 발전하고, 비잔틴과 지배 계급인 게르만족의 공예 문화가 흡수되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