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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국의 분할과 중세의 시작

by.

양진석의 유럽 건축사 수업

유럽 건축사

Byzantine Х Romanesque Architecture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서 있고, 로마가 서 있는 한 세계도 서 있으리라.” 영국의 성직자이자 사학자 베다 베네라빌리스가 콜로세움에 대해 한 말이다. 하지만 팍스 로마나는 영화롭던 시절을 뒤로 하고 훼손된 콜로세움처럼 종국을 맞이하게 된다. 강력한 군주의 힘과 우월한 정치 체계를 기반으로 탄생한 팍스 로마나 시대에 유럽 사회는 ‘평화’의 시기를 맞이했지만, 결국 로마 제국도 서서히 쇠퇴의 길에 들어서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기존 로마 양식에서 벗어난, 비로마적 건축물이 등장한다. 이제 우리도 유럽의 시발점 그리스와 위대한 팍스 로마나의 고전주의 시기를 지나 비잔틴과 로마네스크, 고딕의 시대, 중세로 넘어가 보자.

서기 330년, 로마의 대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로 옮기는 결정을 내린다. 그는 이 도시를 ‘새로운 로마(Nova Roma)’라 부르며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선포한다. 이렇게 로마의 수도가 동쪽으로 치우치면서 한 명의 황제가 넓은 제국을 혼자 관리하기 어렵게 되자, 서기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는 두 아들에게 나라를 양분한다.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의 시작이다. 로마 제국이 시작된 지 400년 만에 제국은 쪼개져 두 명의 황제가 각각 다스리는 형태가 된 것이다. 지금의 이탈리아가 위치한 지역은 서로마가 통치하고, 그리스를 포함한 동유럽과 터키, 시리아 같은 중동 일부는 동로마가 다스리게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두 개의 제국은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서로마 제국의 역사는 채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난다. 서기 476년, 게르만족을 비롯한 외세의 침략으로 서로마가 멸망하고, 이 지역에 프랑크족, 고트족, 게르만족 등이 들어가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이들이 일으킨 전쟁은 팍스 로마나의 문명화된 ‘시스템’보다는 음식, 옷, 가축 같은 재산 탈취가 목적이었다. 이들에게는 문명화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시급했던 셈이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로 유럽 사회는 기나긴 혼돈의 시기에 돌입한다. 대부분의 후대 역사학자들은 바로 이 시기, 서기 5세기 서로마의 멸망을 기점으로 중세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 동로마·서로마 지도.

일찍 무너진 서로마와는 달리 비잔틴 제국으로도 불리는 동로마 제국은 무려 14세기까지 100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유지되었다. 로마 제국의 잔재로서 계속 존재한 것이다. 따라서 비잔틴 혹은 동로마라 칭하지 않고 통상 로마라 부르기도 했다. 다만 ‘비잔틴 제국’이라고 명명된 것은 1453년 제국이 멸망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역사학자들에 의한 것이다. 로마와 비잔틴은 사람들의 생김새도 매우 흡사했고, 비슷한 정부 구조와 문화적 가치를 추구했다. 비잔틴 통치자들 스스로도 자신을 ‘로마인’이라 칭할 정도였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은 로마 제국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수도는 콘스탄티노플, 그리스어를 주로 사용했고, 인구 대다수가 동방 정교회 기독교인이었다.

서로마가 멸망한 5세기부터 동로마가 멸망한 15세기까지 약 1000년에 가까운 시기를 ‘중세’라고 한다. 특히 중세 시대 초기부터 중기까지는 로마네스크 시대, 후기는 고딕 시대로 일컫는다. 이때 유행했던 건축 사조와 그 특징을 살펴보고, 대표 건축물은 무엇인지도 함께 알아보자. 바로 ‘비로마’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는 유럽의 건축으로, 비잔틴과 고딕 양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