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초기에 포로 로마노는 여섯 개의 언덕으로 둘러싸인 습지대로, 주변은 묘지였다. 이곳은 모든 언덕이 연결되어 있어서 도시가 들어서기 좋은 위치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적합했다. 특히 로마 최초로 선거를 통해 왕이 된 5대 왕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가 575년 배수로를 만들어 더욱 활성화되었다. 이 분지를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부터 집회 장소로써 쓰임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곳에는 다수의 포럼과 신전, 기념비 등의 건축물이 여럿 세워졌다.
이후 주변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포럼과 아드리아누스의 포럼, 투라야누스의 포럼 등이 만들어지며 발전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긴 후에, 포럼의 중심이 산 피에트로 성당과 가까운 북서부로 완전히 이동했다. 남은 옛 건축의 잔해는 주위 언덕으로부터 흘러내린 토사나 반입된 쓰레기에 파묻혀 완전히 퇴락하여 채석장이 되었다. 황소의 들로 알려진 캄피돌리오도 산양의 언덕으로 불릴 만큼 황폐해지며 로마 제국의 영화도 쇠퇴해 버렸다. 1803년 나폴레옹의 로마 점령 때 동행한 고고학자 칼로페어가 처음으로 이곳 유적을 발굴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