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로마 양식’이란 무엇일까? 다소 자유롭게 해석하자면, 그리스 양식은 헬레니즘 세계의 확장에 따라 동지중해에서 오리엔트까지 펴졌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이 유산을 이어받아 새로운 전개를 보여준 것은 바로 로마 건축이다. 고대 로마 건축은 목적에 맞게 그리스 건축 양식을 채택해 발전시켰으며, 공학적 재능과 새로운 공간적 구상으로 독자적인 해답을 찾아냈다. 고대 그리스 양식과 로마 양식을 합쳐서 ‘고전 양식’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스 건축이 외관상의 미를 강조하는 ‘장식적’ 건축이었다면, 로마의 건축은 실용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공간적’ 건축이라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 건축은 ‘조각적인 건축’, 로마 건축은 ‘공간 위주의 대규모 건축’을 추구했다고도 할 수 있다.
고대 로마 시민들의 생활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Foro Romano’를 보면 이런 특징을 잘 알 수 있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포럼Forum인 포로 로마노는 팍스 로마나의 핵심이다. 포럼은 그리스의 아고라와 동일한 기능을 하는 공공 광장으로, 정치・산업・사교・교통이 집약되는 공간이다. 즉 포로 로마노는 광장 건축의 시작이다. 포럼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유흥, 토의, 공연 등이 발달했다. 도시를 ‘모이는 공간’의 정점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로마 건축과 그리스 건축의 가장 큰 차이다. 포럼은 대화를 나누기 위한 광장을 의미하는데, 포로 로마노는 말 그대로 ‘로마의 광장’이라는 뜻이다. 보통 포럼은 공공 건축물이나 신전 등에 둘러싸여 있는데, 내부에는 신전이 14개 동이나 있을 정도로 웅장하다. 지금도 로마로 여행하는 많은 이들이 포로 로마노부터 찾을 정도로 그 자취와 흔적, 남겨진 유산들은 거의 압도적이다.
당시에 지어진 포럼을 보면 카라라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탈리아의 카라라 부근에서 채취하는 이 대리석은 청색을 띤 백색이거나 푸른 줄이 들어 있는 백색이다. 현대의 미국 부호들이 부의 상징으로 이 백색 카라라 대리석을 사용해 건축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리석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앞서 파르테논 신전에서 본 바 있는 삼각형 페디먼트와 우뚝 솟은 기둥들이다. 이는 로마인들이 그리스 건축 양식을 그들의 삶에 녹여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증거다. 로마 건축은 이처럼 그리스 건축의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더욱 진화하고 변화했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의 유구한 역사 내내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 주요 정부 기관 건물들이 직사각형 모양의 광장을 둘러싼 형태가 제국 시대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이곳에서 개선식, 공공 연설, 선거 등 국가의 중대 행사들이 열렸고, 고대 왕궁, 베스타 신전, 베스타 여사제들의 거처 또한 모두 이곳에 있었다.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포로 로마노의 라틴어)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로마 제정 시기에 크게 확장되었다.
동남쪽에는 로마 공화정 시기의 의회장이 있었다. 그 외에도 공화국 정부 기관, 신전, 동상, 사원들이 곳곳에 즐비해 있었다. 포룸 로마눔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기에 한 차례 탈바꿈하게 되는데, 포룸 한복판에 ‘율리우스를 기리는 바실리카Basilica’를 짓고, 그곳으로 원로원 회의장과 재판장을 모두 옮겨 버렸다. 바실리카는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대규모 건축물을 지칭하는 말로 점차 종교적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로마 공화정 후반과 제정 초반에 시민들은 이곳에 모여 국가의 정치적 결정을 수행했다. 제정 시대에 이르러 포룸 로마눔이 차지하던 경제적 업무는 대부분 트라야누스 포룸Trajan’ s Forum과 같은 더욱 거대한 건물로 옮겨 갔다. 마지막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포룸 로마눔을 크게 확장했으며, 이후 200년 동안 서로마 제국의 정치적 중심이 되었다.
기원전 4세기 말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 로마의 승리와 번영이 꽃피운 건축은 팍스 로마나에서 절정을 이룬다. 특히 옥타비아누스 황제는 신전 건축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순백의 고급 대리석 카라라를 주로 사용해 아폴로 신전 등 82채를 건설했다. 2,000개 좌석을 수용하는 규모의 마르켈루스 원형 극장은 검투・전차 경주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설계자의 이름을 딴 아그리파라고 불리는 대형 목욕탕은 냉탕, 온탕, 증기탕, 수영장, 체육관, 도서관, 휴게실과 여가용 부대시설을 완비했다. 사실 로마 건축은 그리스 신전처럼 특정한 하나의 건물 유형으로 한정할 수 없다. 특히 공중 목욕탕, 원형 극장, 원형 투기장 등의 웅장한 구조물들은 로마 시대에 새로 생겨난 건축 유형이다. 그리스 시대와는 달리 로마 시대에는 다양한 ‘모이는’ 공간들이 생겨났는데, 광장, 목욕탕, 투기장 등은 사람들의 모임에 대한 욕망을 로마의 통치체제가 잘 이해했기 때문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카라칼라의 목욕탕과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목욕탕은 건축학적으로도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데, 규모도 엄청나다. 이들 목욕탕은 로마의 사회적 공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공공 집회 장소로서 바실리카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다. 집회 장소인 바실리카 또한 황제의 목욕탕과 비슷한 구조로 길이 80미터, 폭 25미터, 높이 35미터이며, 중심부인 네이브는 넓고 개방된 구조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