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그리스의 역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기원전 148년, 폴리스를 지배하던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고, 기원전 146년에는 로마의 보호령으로 전락하게 된다. 유럽의 시발점이자 유럽 건축의 기틀을 닦은 고대 그리스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후로 유럽의 패권을 장악한 것은 로마 제국이다. 로마는 강력한 힘과 위세로 전 유럽에 영향력을 떨치면서 제국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의 도시들은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고, 제한된 주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또 기원전 146년경 카르타고와 코린토스 등을 파괴하고 오리엔트에 진출한 로마는 기원전 63년 시리아 왕국을 속주로 삼아 ‘아시아’라 명명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로마의 문화는 ‘헬레니즘’이라는 문명사적 용어로 불리는 그리스 문화에서 출발했다. 에트루리아의 식민지에서 지중해 세계의 지배자로 떠오른 로마는 기원전 272년 이탈리아반도의 통일을 완성했다. 지중해 동부의 주인은 그리스였으며, 로마는 카르타고와 했던 포에니 전쟁 중 세 차례의 격돌 끝에 지중해 서쪽 절반을 차지했다. 이후 로마는 마케도니아를 정벌하며 지중해 동쪽을 지배하게 되었다.
왜 로마는 그토록 강력한 세력이 되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로마의 집단 의식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로마의 공화정은 혈통보다는 입양, 노예, 동거인, 혼령, 사물을 포함하여 가족의 확대판인 광의廣義의 집단을 이루었다. 이탈리아인의 미국 이민 역사를 다룬 영화 <대부>에서 마피아로 성공한 시칠리아 출신 ‘돈 콜리오네 패밀리’가 스스로를 “로마의 후손인 우리가 지금의 영광을 맞이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대사가 나온다. 이는 우리는 가족이며, 그 세력을 넓혀 가고 있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로마는 ‘가족의 확장’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거대한 도시를 발전시킬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주거용 건물의 크기도 이전보다 커졌다. 그리스에서는 철학과 예술을 즐기며 신전에서 토의하는 문화가 발전했다면, 로마에서는 이러한 집단 의식을 바탕으로 거대한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기원전 30년부터 기원후 180년까지 로마의 영광이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를 라틴어로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일컫는다. 영어로는 ‘Roman Peace’, 로마에 의한 평화라는 뜻이다. 이른바 로마 제국이 전쟁을 통한 영토 확장을 최소화하면서 오랫동안 평화를 누렸던 시기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시기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아우구스투스의 평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117년 무렵에는 속주의 면적을 합치면 약 5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했다. 인구를 보면 적게는 5,000만 명, 많게는 8,000만 명, 심지어 1억 명까지도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서울의 면적이 600제곱킬로미터 남짓이니, 당시 로마의 위세가 어떠했는지 대략 숫자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팍스 로마나 동안 로마는 예술・학문・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는데, 물론 건축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스의 유산을 계승하는 동시에 이를 더욱 정교화해 양식으로 확립했기 때문에 그리스・로마 건축을 하나의 양식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통치 수단으로도 이용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는 더욱 발전되었다. 그리스가 시작하고 로마가 마무리한 이 건축 양식을 ‘고전주의’라고 부르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앞으로 ‘로마 양식’이라고 부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