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어떤 것을 건축이라고 말할까? 건축의 역사를 말하기 전에 우선 건축의 정의를 먼저 살펴보면 이렇다. 건축建築, Architecture은 ‘흙, 나무, 돌, 쇠 등을 써서 짓는 것’으로 ‘종합적으로 계획하고 구축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최초의 건축은 인간이 비바람, 햇볕과 같은 외부 환경과 맹수나 다른 종족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피난처Shelter였다. 이러한 건축의 기본 역할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다시 말해, 건축은 은신처 기능에서 출발했고, 자연과는 또 다른 ‘환경’을 조성했다. “인간은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인간을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오늘날 건축과 인간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서로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제 농기구 사용으로 농경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정착 생활을 하고 나아가 도시를 건설하게 되었으며, 문명 또한 발흥했다. 여기에서 ‘도시를 이루게 된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단편적으로만 보아도 유목 생활을 했던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과는 달리 로마는 한곳에 정착했기 때문에 도시를 만들고 사회 체계를 구축해 왕국을 만들 수 있었다. 로마는 도로와 수로를 건설해서 복제 도시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그렇게 유럽의 도시 역사는 로마와 로마의 ‘복제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복의 역사는 이렇게 로마로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의 뇌에서 출발해 뇌혈관으로 뻗어 나간 세세한 신경구조가 우리의 신체를 통제하듯, 유럽의 도시 역사는 로마의 중심 도시에서 퍼져 나간 복제 도시가 지속적으로 반복된 역사라 말할 수 있다. 이는 곧 유럽 건축사의 발전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스 문화는 헬레니즘Hellenism이라는 문명사로 통하게 된다. 헬레니즘은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에서부터 기원전 30년 로마의 이집트 병합 때까지 그리스와 오리엔트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문화 시대를 말한다. 세계 시민주의・개인주의 경향이 나타났으며 이때 자연 과학이 발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그리스 문화는 로마 문화에도 동일하게 계승되었다. 더불어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전반적인 유사성은 건축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이 정말로 유사한지 그리스 아테네를 먼저 살펴보자. 아테네는 2500년 전 기원전 5세기 유럽이라는 공동체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 이 시기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Polis라는 지중해의 작은 도시 국가들의 집합체에 불과했다. ‘동서양 문명 충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리스・페르시아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세계사의 판도를 결정한 이 길고 긴 전쟁이 끝나고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은 이전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인들에게 공동체 개념은 이전과 달라졌다. 단순한 연합이었던 도시 국가들이 ‘유럽’과 ‘유럽인’이라는 집단 정체성을 띠고, 말 그대로 문명의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 승리한 전쟁으로 인해 도시가 부강해지면서 시민들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고도로 세련된 스포츠, 연극, 음악 등의 예술을 향유하게 된다. 이에 따라 학문, 교육, 예술 분야 등에서 다양한 계층과 직업이 탄생했다. 또한 다양한 민족과 해상 무역, 상업 등을 활발하게 도모하며 민주적 체계 역시 확립할 수 있었다. 유럽 학문의 초석이 된 소크라테스학파도 이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황금기의 아테네에는 바위 지대에 지어진 성채인 아크로폴리스를 비롯하여 건축학적・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축물이 세워졌다. 또 고대 그리스 건축 양식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파르테논 신전도 이때 지어졌다.
그리스 건축은 결국 ‘신전 건축’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스 신전은 독특한 기후와 함께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신전의 핵심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건축’이다. 공간미보다는 외형적 아름다움을 중요시했다. 삼면을 벽으로 두르고 남은 한 면을 입구로 한 장방형(직사각형) 홀이 원통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서 있는 건축상의 지주, 원주Column에 둘러싸인 형태다. 결국 그 열주列柱(줄지어 늘어선 기둥)들은 최고의 미학적 표현으로 사용되었고, 500년 동안 조화와 비례의 상징으로 개발되었다.
페르시아전쟁이 끝날 무렵인 기원전 480년에 지어진 파르테논 신전은 전쟁의 여신 아테나를 모신 곳이다. 조각가 페이디아스와 건축가 칼리크라테스가 착공했고, 여기에 수학자 익티노스가 가세해 수학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역사적으로 파르테논 신전은 다른 여타 오래된 古건축물들처럼 많은 굴곡을 겪었다. 로마 제국이 그리스를 식민지로 병합했을 당시 이미 그리스의 영광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자 그리스의 신들은 사라지고 파르테논 신전은 가톨릭 교회로 변했다. 파르테논 신전은 4세기 말 비잔틴 제국이 그리스 정교회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이후 1000여 년 동안 그리스 정교회의 사원으로 변하기도 했다. 15세기 비잔틴 제국의 몰락 이후 이슬람 국가 오스만 튀르크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350년 동안 그리스라는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지고 파르테논 신전이 이슬람의 모스크로 변해 버린 역사도 있다. 19세기가 되어서야 오스만 튀르크로부터 독립하면서 1832년 그리스 왕국이 부활했고, 그리스 최초의 통일 민족국가가 되면서 지금의 파르테논 신전을 유지하게 되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이 수의 관계에 따라 질서 있는 코스모스Cosmos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코스모스는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 또는 세계를 뜻한다. 그리스는 ‘세계는 비례에 의해 성립된 조화로운 공간’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수적 질서가 갖는 명확성을 좋아했다. 그러한 성격이 압축적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오더Order’라고 불리는 기둥의 구성이다. 건축은 기하학에 입각한 예술이기 때문에 비례가 가장 유효한 창작 원리다.
그런 맥락에서 당시 오더의 의미는 세계관의 몰입이었다. 오더는 고전 건축 조형을 근본적으로 규정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이자, 이후 세대의 건축인 중세 건축과 구별되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이다. 오더는 곧 ‘질서’다. 결국 건물이란 중력과의 끊임없는 전쟁과 대화의 결과물이다. 즉 기둥이 없으면 건물을 세울 수 없다. 그래서 기둥의 역사는 곧 건축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그리스 건축의 오더에는 단순하고 역학적인 기능을 넘어서 중력을 지탱하는 일의 숭고함, 직립하는 인간의 숭고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오더의 비례 체계, 오더가 만드는 건축 전체의 볼륨과 비례는 역학적 필연성 때문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미적 가치로 결정된다. 오더의 발전은 현대 건축에까지 구조와 조형의 요소로서 이어져왔다.
또 하나 그리스 건축물의 결정적인 특징으로 페디먼트Pediment를 들 수 있다. 페디먼트는 건물이 알리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려 놓은 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기둥이 건축물을 받쳐주고, (건축물 정면 상부에 있는 삼각형 판에) 장식적이고 조형적인 페디먼트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당대 건축가들은 풍요와 여유를 가져다준 아테나 여신을 찬양하는 메시지를 파르테논 신전에 새겨 넣을 방법을 고민했는데, 이 페디먼트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알려져 있듯 당시에는 활자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아닌, 조각 등으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했다. 그리스인들은 신전의 의미를 보여주고 외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삼각형 페디먼트를 이용했고, 이것이 장차 ‘로마 스타일’로 이어져 후대에도 그 모습이 다양한 건축물에 남게 되었다. 우리는 이 페디먼트의 존재 여부로 그리스・로마 건축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럽에 가면 한번 건축물의 페디먼트를 유심히 살펴보자. 아마 여행이 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그리스의 신전은 처음에는 목재, 다음으로 석회석 같은 무른 석재들로 지어졌지만, 나중에는 대리석으로 바뀌었다. ‘이탈리아 대리석’ 하면 대리석의 대명사로 여겨지는데, 현대 건축에서도 부의 상징이자 견고함과 권위를 건물에 드러내고 싶을 때 바로 이 ‘이탈리아 대리석’을 많이 사용한다. 그리스 신전의 예술적 성취는 대리석으로 만든 스토아Stoa뿐만 아니라 다른 공공건물이나 기념비적 건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토아는 기둥이 늘어선 복도를 말한다. 시민이 산책하거나 상업 활동, 집회 등에 이용했다. 이 으뜸가는 현존 건축 양식은 서양 건축의 기본 양식으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다시 기둥, 오더에 관해 말해보자. 오더는 크게 세 가지, 도리아식Doric Style, 이오니아식Ionic Style, 코린트식Corinthian Style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연대별로 변화되어 왔고, 각 이름도 그리스의 지역에서 따왔다. 먼저 도리아식 오더는 건축물 터에 한 층 쌓아 올린 기단에 원주를 세우는 형태로, 위로 갈수록 굵기가 줄어든다. 모양 같은 것을 조각하지 않은 가장 단순한 형태다. 묵직하고 중후하며 간소하고 엄격해 보인다. 기둥은 완만한 곡선형 배불림이라고도 하는 앤타시스Entasis가 있고, 기둥에 얕은 세로줄 홈이 패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앤타시스는 건물의 조화와 안정을 위하여 기둥 중간 부분을 약간 불룩하게 만드는 건축 양식이다. 도리아식 오더가 적용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파르테논 신전이다. 그 밖에도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도리아식 오더는 올림피아의 헬라 신전, 델포이나 코린트의 아폴론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파에스툼의 포세이돈 신전 등에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이오니아식은 도리스식과 거의 비슷하지만 기둥이 높고 가늘며, 세세한 조각 장식이 많아서 경쾌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준다. 기둥 상단에 양머리 형상을 조각하기 시작한 기법으로,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이오니아식 오더다. 코린트식 오더는 기원전 4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기법이다. 기둥머리는 원뿔형을 가운데서 잘라 뒤집어 놓은 모양이며, 그 표면에 아칸서스(톱니 모양의 잎과 한껏 꼬부라진 줄기를 가진 쥐꼬리망촛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 잎과 덩굴이 얽힌 모양을 조각해서 이오니아식보다 한층 더 우아하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결국 코린트식은 앞서 발전된 기둥의 양식에서 보다 화려해지고 좀 더 정밀하게 표현된 조형 양식이라 말할 수 있겠다. 코린트식 오더가 적용된 신전으로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가까이에 있는 올림피에이온(올림포스의 제우스 신전이라는 뜻)이 있는데, 약 17미터 높이의 열주가 l04개나 늘어선 최대 규모의 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