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설계: 안도 다다오+와이그룹 건축사사무소
본태박물관은 한국 전통 공예와 현대미술을 함께 조망하는 복합전시공간이다. 이곳을 설립한 이행자 고문은 대중적으로는 ‘정주영 회장의 넷째 며느리’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의 ‘본모습(本態)’을 전하고자 수십 년간 유물을 모아온 베테랑 수집가이기도 하다. 약 40년에 걸쳐 축적된 그의 컬렉션은 1,000여 점에 이르며 상여와 추사 현판 등 한국 전통의 생활과 미감을 보여주는 유물부터 현대미술 작품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특히 백남준과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을 포함한 현대미술 작품은 전통과 현대를 잇는 독특한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24년 옥관문화훈장 수훈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랜 시간 수집해 온 한국 전통 공예와 예술품을 담기 위해 시작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본태박물관은 단순한 박물관 이상의 성격을 가진다. 개인의 수집이 공적 경험으로 바뀌는 자리이기도 하고, 전통 공예가 현대 건축 안에서 다시 읽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컬렉션과 건축 중 어느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두 세계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함께 머물 수 있는 거리감이다.
본태박물관은 한라산 중산간 지대, 완만하게 펼쳐진 비오토피아 단지 안에 놓여 있다. 제주도 특유의 현무암 지형과 강한 바람, 낮은 식생이 만드는 수평적인 풍경 속에 자리한다. 박물관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한국의 전통 공예와 미술을 다루는 공간, 다른 하나는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공간이다. 성격과 스케일이 전혀 다른 두 프로그램 사이를 하나의 동선으로 엮는 것이 이 건축의 핵심 과제였다. 안도 다다오는 이를 ‘길’로 풀었다. 두 건축 사이에는 전통 담장과 골목을 연상시키는 긴 외부 동선이 놓여 있고, 그 중심에는 얇고 길게 이어진 수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방문객은 이 물의 정원을 따라 이동하고, 다리를 건너며 자연스럽게 전시 공간으로 유도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순서다.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를 지나고, 언제 시야가 열리는지가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아래 기사는 와이그룹 건축사사무소 현주학 소장과 설계팀의 인터뷰를 통해 구성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은 평면에서 시작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단순한 벽과 선의 배열이지만 평면 위에 그려진 동선의 구조가 시간과 시선을 조직한다. 그래서 이 건축은 ‘형태를 보는 일’이 아니라 평면을 따라 몸이 움직이며 완성되는 경험에 가깝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평면의 질서’가 단일 건물에 머무르지 않고 단지 전체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최근 개관한 전시관 본스타(BONSTAR)는 바로 이 흐름을 연장하는 장치로 읽힌다. 공동 설계에는 안도 다다오와 건축가 양진석이 이끄는 와이그룹 건축사사무소가 참여했다. 본태박물관 단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그래서 이번 본스타 프로젝트는 단순한 증축이 아니라 기존 단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기존 평면의 질서를 다시 조직하는 과정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동선이었다. 새로 지어진 5관은 단지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며 방문객은 반드시 기존 4관을 통과해야 한다. 이때 4관은 안도 다다오의 설계가 아닌 건물로, 전체 맥락에서 이질적인 요소였다. 해법은 배제가 아니라 연결이었다. 두 건물 사이에 브리지를 설치하고 기존에 활용도가 낮았던 옥상 공간을 새로운 동선으로 편입시켰다. 그 결과 5관은 독립된 오브제가 아니라 단지 전체 흐름을 재조직하는 장치로 작동하게 된다.
외장재 역시 변화의 신호다. 콘크리트 중심이었던 기존 건물과 달리,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리브 형태의 스틸 패널이 도입되었다. 현대스틸의 제품을 외장재로 활용해보자는 요청이 있었고 이에 대한 건축적 해석이 필요했다. 안도 다다오는 스틸을 충분히 건축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평면적인 판재가 아니라 골지(리브) 형태로 가공해 빛과 그림자에 의해 입면이 살아 움직이는 방향을 설정했다. 기술적 제약도 분명했다. 스틸 패널은 폭 약 1.2m, 길이 약 3.5m로 제작 한계에 가까웠고 설계의 핵심은 패널 간 접합부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처리할 것인가에 있었다. 와이그룹의 현주학 소장은 “이음부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리듬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한다. 반복과 분절의 질서를 통해 재료의 한계를 디자인 언어로 전환한 것이다.
실내는 최소한의 구조와 재료만으로 구성되었다. 여백과 고요함을 강조해 관람객이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외부의 역동성이 내부에서는 정적으로 전환된다. 기하학적 선이 교차하는 노출 콘크리트 면, 삼각형 계단실을 따라 이어지는 수직 동선, 천장 개구부로 들어오는 제주 하늘빛이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빛과 그림자는 시간에 따라 변주되며, 비워낸 공간 속에서 오히려 충만함을 느끼게 한다. 지하 1층에는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호박’과 ‘무한 거울 방 – 영혼의 광채’가 이전 전시되어 몰입감 있는 경험을 이어간다. 2층에는 카페가 마련되었고, 옥상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제주의 오름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이번 프로젝트의 또 다른 핵심은 ‘물’이었다. 핀크스 비오토피아 지구단위계획 구역은 이미 용수량이 포화 상태였다. 신관을 신축하려면 용수 확보가 선행되어야 했다. 1차 단계에서 4관을 전시관에서 창고로 용도 변경해 용수 산정 기준을 조정하고 인허가를 확보했다. 공사 중에는 핀크스 측과 협의를 통해 호텔 수영장을 용수 산정에서 제외하여 약 100톤의 추가 용수량을 확보했다. 준공 이후 다시 4관을 전시관으로 환원했다. 이는 행정 절차를 넘어, 시간과 기능을 설계 전략에 포함시킨 사례다.
본스타로 가는 길은 특별히 강조되지 않는다. 안내판이 강하게 이끌지도 않고 극적인 장면 전환도 없다. 대신 본태박물관에서부터 이어지는 익숙해진 리듬이 조용히 이어진다. 한 번 꺾이고, 잠깐 멈추고, 다시 걸어 들어가는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공간으로 넘어가게 된다. 마치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긴 평면 위를 계속 이동하고 있는 듯한 감각이 남는다. 중간에 놓인 브리지나 옥상 동선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순간조차도 하나의 장면이라기보다 리듬의 일부처럼 흘러간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분명하게 끊어지지 않는다. 외벽의 재료가 콘크리트에서 스틸로 바뀌는 변화 또한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빛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표면을 시선을 붙잡기보다 이동하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배경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무엇을 보았다는 기억보다, 어떻게 걸었는지라는 미묘한 기억과 잔상이 남을 것이다.
신관 ‘본스타’는 기존 노출 콘크리트 중심의 작업에서 한 단계 확장된 건축이다. 가장 큰 특징은 스테인리스 마감재의 적극적 활용이다. 녹이 슬지 않는 금속을 외벽에 적용해 바다, 빛, 구름, 하늘이 건물 표면에 스며들도록 설계했다. 높이 8.28m,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건물은 정교한 노출 콘크리트 위에 수직 리듬의 스테인리스 패널이 더해진 구조다. 이로써 외벽은 하나의 ‘고정된 표면’이 아니라, 시간과 날씨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거대한 캔버스가 된다. 은빛 입면은 전통 기와 담장과 대비를 이루며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기존 본관이 빛과 물, 콘크리트의 조합으로 ‘내면적’ 경험을 만들었다면, 본스타는 반사를 통해 외부 풍경과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한다. 건물은 풍경을 배경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끌어안는다.
글 와이그룹 콘텐츠 디렉터 김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