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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석의 여섯 채의 집] 4 서울 제기동 ‘빛이 드는 집’

by.

조선일보

건축과 사회

칼럼 소개

집을 짓는다는 것은 가족에게 꼭 맞는 옷을 짓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 공간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가족의 삶이 온전히 시작되고 축적되는 터전이 됩니다. 집과 가족은 결국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입니다. 땅집고는 예능 프로그램 ‘러브하우스’를 통해 국내 인테리어와 건축의 대중화를 이끌어온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가 2016년에 완공한 여섯 채의 집을 소개합니다. 각각의 집에는 건축적 해법뿐 아니라, 한 가족의 삶을 담아내기 위한 고민과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오랜 세월 한약재를 배달하던 아버지는 은퇴 후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다리를 다쳐 뼈가 온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을 멈출 수 없다. 취업을 준비하는 딸은 하루 대부분을 집에서 보낸다. 이 가족이 머물던 집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주택은 전형적인 개량 한옥 형태의 양옥이었다. 한때는 햇볕이 잘 드는 건강한 집이었지만, 주변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였고 빛이 차단되었다. 집은 점차 습해지고 차가워졌다. 집이 병들면,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삶도 함께 위축된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집을 다시 건강하게 되살리는 작업이었다. 진입도로 문제로 인해 신축은 불가능했고, ‘대수선’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다. 대수선은 기둥과 보, 내력벽, 주계단 등 주요 구조를 유지한 채 외형을 수선·변경·증설하는 방식이다. 기존 면적을 지키면서도 새롭게 재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약 60㎡(18평)~ 66㎡(20평) 규모 안에서, 밝고 희망을 담은 집으로 되돌려주고자 했다.

빛과의 전쟁

제기동 집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거의 받을 수 없는 ‘영구 음영’ 상태에 가까웠다. 설계의 핵심은 채광 확보였다. 천창을 만들고, 남측과 동측에는 가능한 한 넓은 개구부를 두어 빛을 오래 머물게 했다. 동시에 고밀도 주거지 특성상 프라이버시 보호 역시 중요했다. 외부형 슬라이딩 가림막을 설치해 빛과 시선을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도심형 주거에서 채광과 프라이버시는 서로 충돌하는 요소처럼 보이지만, 적절한 장치를 통해 공존할 수 있다. 이 집을 다시 세우는 과정은 말 그대로 ‘빛과의 전쟁’이었다.

집은 마당을 품은 ‘ㄴ’자 구조로 재구성되었고, 공간 구성은 한옥의 원리를 따랐다. 경사 지붕을 수정해 남측으로 사면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처마가 드리워지도록 했다. 처마 아래에는 대청마루를 두어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완충 공간을 만들었다. 높은 단차는 경사 램프로 해결했다. 입구에 면한 방은 출입문 형태의 큰 창을 두어 사랑채 기능을 겸하도록 했다. 장차 2세대 주거 또는 임대를 고려한 유연한 계획이기도 하다. 환기 역시 중요했다. 북측과 서측에도 창을 내어 십자형으로 바람이 통하도록 설계했다. 이는 단순한 환기를 넘어, 한옥이 지닌 치수 감각과 공간 감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시도였다.

한옥의 감각을 계승하다

출입 방식은 전통 한옥의 흐름을 따랐다. 별도의 현관 대신 마당과 툇마루를 통해 자연스럽게 진입하도록 구성했다. 과거 한옥은 방을 땅에서 띄워 습기를 차단했고 구들을 통해 난방을 해결했다. 제기동 집 역시 대수선을 통해 기존 바닥을 보강하고 난방 시설을 재설치했다. 구조 보강 과정에서 바닥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며 한옥 특유의 공간 감각이 살아났다.

마당과 실내 사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이는 벤치이자 현관 디딤돌이며, 내부와 외부를 매개하는 공간이다. 한옥의 방은 다목적이다. 문을 열면 연결되고, 닫으면 독립된다. 제기동 집 역시 이러한 유연성을 계승해 주방과 거실에 인접한 다목적 공간을 마련했다. 문을 닫으면 침실이 되고, 열어두면 거실이 확장되는 식이다. 과거에 음지 공간은 음식 보관과 작업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한옥은 이미 수직 확장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를 반영해 북측 다목적 공간 위에 다락을 설치했다. 경사 지붕이 만들어낸 잉여 공간을 활용한 것이다. 다락은 창고이자 또 다른 생활 공간으로 기능한다.

구조를 살리고, 삶을 살리다

이 집은 구조적으로도 위험 요소가 많았다. 인접 건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태였다. 대수선의 첫 번째 과제는 안전 확보였다. 구조 보강 작업으로 공사는 예상보다 지연되었지만, 이는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기존 바닥은 일부가 무너지고 난방 효과도 미미해 집은 항상 냉골이었다. 바닥 공사를 통해 구조를 보강하고 난방을 새로 설치했다. 집이 비로소 ‘튼튼해지는’ 순간이었다.

대수선의 장점은 동일한 면적 안에서 공간을 재배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당에 있던 장독대와 화장실 창고를 철거하고 그 면적을 주방 다용도실로 전환했다. 수평적 이동과 재배치를 통해 공간 효율을 높였다. 그 결과 마당은 더욱 넓어졌고, 또 하나의 거실처럼 기능하게 되었다. 주방과 연결된 거실은 대청마루의 현대적 해석이다. 현관이 되기도 하고, 가족실이 되기도 하며, 벽을 세우면 잠자는 공간이 된다. 고정된 기능을 갖지 않는 공간, 상황에 따라 변하는 공간. 그것이 한옥의 본질이자 이 집이 지향한 방향이었다.

제기동 ‘빛이 드는 집’은 단순한 리모델링 사례가 아니다. 빛을 되찾고, 구조를 보강하고, 한옥의 감각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재생의 작업이다. 집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삶도 조금씩 밝아지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집을 짓는다는 것은 가족에게 꼭 맞는 옷을 짓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 공간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가족의 삶이 온전히 시작되고 축적되는 터전이 됩니다. 집과 가족은 결국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입니다. 땅집고는 예능 프로그램 ‘러브하우스’를 통해 국내 인테리어와 건축의 대중화를 이끌어온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가 2016년에 완공한 여섯 채의 집을 소개합니다. 각각의 집에는 건축적 해법뿐 아니라, 한 가족의 삶을 담아내기 위한 고민과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