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개
집을 짓는다는 것은 가족에게 꼭 맞는 옷을 짓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 공간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가족의 삶이 온전히 시작되고 축적되는 터전이 됩니다. 집과 가족은 결국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입니다. 땅집고는 예능 프로그램 ‘러브하우스’를 통해 국내 인테리어와 건축의 대중화를 이끌어온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가 2016년에 완공한 여섯 채의 집을 소개합니다. 각각의 집에는 건축적 해법뿐 아니라, 한 가족의 삶을 담아내기 위한 고민과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이 집은 한국과 베트남, 두 문화가 만나 완성된 다문화가정의 보금자리다. 양가 부모와 부부, 그리고 아이들까지 총 일곱 명이 함께 사는 대가족을 위한 주택이었다. 면적은 비교적 넉넉했지만, 구조적으로는 가장 낡고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골조에 사용된 중목 자재만 해도 다른 집보다 두 배 이상 들어갔을 만큼 손볼 곳이 많았다.
설계의 출발점은 단순한 개·보수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세대와 문화가 한 지붕 아래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었다. 양가 부모의 동선을 고려해야 했고, 그동안 부부만을 위한 공간이 없었던 점도 해결해야 했다. 아이들을 위한 욕실 역시 새롭게 계획해야 했다. 다행히 본채와 별채가 분리된 전통 가옥의 특성 덕분에 활용 가능한 영역이 넓어, 다양한 건축적 시도를 담아낼 수 있었다.
줄기처럼 이어지고 잎처럼 뻗는 공간
이 집의 중심 개념은 ‘식물’이다. 25m에 이르는 긴 복도는 식물의 줄기와 같고, 그 줄기에서 뻗어 나가는 각각의 방은 잎의 형상을 닮았다. 복도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집 안의 모든 공간을 연결하는 상징적 축이다. 여러 세대와 문화가 하나로 이어지는 매개이자, 이 집의 기본 동선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집이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각각의 방은 비교적 작은 규모로 계획되었지만, 복도와 주방, 거실을 일체형으로 구성해 개방감을 극대화했다. 평면을 위에서 보면 긴 복도에 방들이 매달린 포도송이처럼 보인다. 식물의 구조에서 착안한 유기적 건축이라 할 수 있다.
매스와 매스 사이에는 의도적인 틈을 두었다. 이 틈은 외부 공간과 직접 접하도록 설계되어 채광을 확보하고 바람 길을 만든다. 바람이 흐르는 공간은 집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동측과 서측 거실에는 넓은 베란다 창을 두었고, 북측 주방 창과 남측 뒷마당 창을 통해 중앙에서는 십자형으로 교차하는 바람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환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집이 오랜 시간 건강하게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세대와 문화를 배려한 공간 구성
가장 안쪽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방을 배치했다. 남향과 동향으로 창을 내어 충분한 빛과 통풍을 확보했고, 바닥을 약간 높인 툇마루에서는 손자들이 마당에서 뛰노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편백나무 칠 마감으로 건강을 고려한 공간을 완성했다. 베트남 외할머니의 방은 입구 쪽에 배치했다. 문화적, 정서적 배려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아이 엄마와 함께 모국어로 대화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두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욕실도 마련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는 집의 태도가 공간에 반영된 사례다.
아이들 방과 부부 방은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갖게 된 부부만의 방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해 계획했고, 아이들 방은 2층 침대를 두고 뒷마당과 바로 연결되도록 했다.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욕실은 넉넉한 크기로 구성해, 세대가 달라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집에는 대가족의 구심점이 되는 공간이 필요했다. 동·서측 마당과 연결되고, 정자로 이어지는 중심부에 주방과 거실을 배치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식사 공간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키친’의 역할을 수행한다. 함께 모이고,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장소다.
색채와 기억, 그리고 마을과의 관계
외관은 베트남의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 파스텔 톤으로 마감했다. 지붕과 외벽, 그리고 내부에도 다양한 색을 적용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가족이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선택이었다. 이 다채로운 색채는 마을 풍경에도 새로운 활력을 더했다. ‘무지개하우스’라는 개념 아래, 일반 주택에서는 쉽게 사용하지 않는 핑크 계열(프렌치 핑크, 핑크 브라운, 적갈색)을 과감하게 외관 색으로 채택했다.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집의 정체성을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당의 정자는 베트남 노천 카페를 연상시키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다. 다문화가정 구성원뿐 아니라 이웃 주민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했다. 이곳이 이국땅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베트남 모녀에게 위로가 되고, 동시에 마을과의 연결점이 되기를 바랐다.
시간을 품은 감나무
이 집의 배치는 몇 차례 수정되었다. 50년 전 할아버지가 손수 심었다는 감나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감나무는 단순한 조경 요소가 아니라, 이 땅의 기억이자 가족의 역사였다. 건축은 새로운 구조를 세우는 일이지만, 동시에 기존의 시간을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겨울이 지나 감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상상하면, 이 집은 비로소 또 하나의 계절을 맞는다. 한국과 베트남, 과거와 현재, 세대와 세대가 한 지붕 아래에서 공존하는 풍경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이 집은 단순히 크기가 큰 대가족 주택이 아니다. 문화와 세대, 기억을 하나의 줄기로 묶어낸 공간적 실험이다. 복도는 줄기가 되고, 방은 잎이 되어 서로를 지탱한다. 그 구조 속에서 가족은 함께 살아간다.
필자 소개
양진석 건축가는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안양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와이그룹 대표 건축가로 활동하며, 건축교육프로그램 파이포럼의 주임교수로서 후학 양성과 건축 담론 확장에 힘쓰고 있다. 그의 저서 『집 짓다 담다 살다』(컬쳐그라피)는 방송을 통해 선보였던 여섯 채의 집을 중심으로, 기획과 설계,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아낸 기록이다. 방송에서는 다 전하지 못했던 건축적 고민과 현장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내며 집을 짓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깊이있게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