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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석의 여섯 채의 집] 2 작지만 반전이 있는 파주 협소주택

by.

조선일보

건축과 사회

칼럼 소개

집을 짓는다는 것은 가족에게 꼭 맞는 옷을 짓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 공간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가족의 삶이 온전히 시작되고 축적되는 터전이 됩니다. 집과 가족은 결국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입니다. 땅집고는 예능 프로그램 ‘러브하우스’를 통해 국내 인테리어와 건축의 대중화를 이끌어온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가 2016년에 완공한 여섯 채의 집을 소개합니다. 각각의 집에는 건축적 해법뿐 아니라, 한 가족의 삶을 담아내기 위한 고민과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1cm도 놓치지 않는 설계

이 집에는 ‘그리드(grid)’ 개념을 적용했다. 눈금처럼 촘촘한 사고를 통해 1cm의 공간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규모는 작지만, 공간 구성만큼은 가장 풍요롭게 만들고자 했다. 핵심 개념은 ‘부피 안의 부피’였다. 하나의 공간 안에 또 다른 작은 공간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평면을 나누는 2차원적 접근이 아니라, 입방체 공간을 전제로 한 3차원적 설계였다.

거실 위로는 다락을 들였고, 거실 밖으로는 또 다른 공간이 확장되도록 계획했다. 옥외에는 퍼걸러(pergola)를 두어 그늘과 구조적 확장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는 기둥과 선반 구조로 이루어진 장치로, 외부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면서도 유연한 사용을 가능하게 한다.

딸을 위한 다락은 특히 상징적인 공간이다. 화장실 바닥 레벨을 일부 낮춰 층고를 조정하고, 그 위에 최소한의 높이로 다락을 구성했다. 구조적으로는 공중에 떠 있는 여분의 부피를 활용한 셈이다. 작은 집 안에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든 것이다.

외부를 통한 확장

같은 43㎡라 하더라도 아파트와 단독주택은 체감 면적이 다르다. 주택은 외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내부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실 앞의 퍼걸러 공간은 또 하나의 거실이 된다. 루프 시스템을 적용해 차양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했고, 날씨와 계절에 따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실내와 실외의 경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장치가 된다.

현관 옆에 마련한 작은 포켓 테라스 역시 마찬가지다. 면적 산정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주방과 연계해 실질적인 생활 공간으로 기능한다. 딸 방 앞의 외부 공간 또한 동일한 개념으로 계획했다. 이처럼 다양한 접지 공간은 작은 집에 예상치 못한 풍요로움을 더하고, 체감 면적을 실질적으로 확장시킨다. 협소주택에서 중요한 것은 ‘면적의 크기’가 아니라 ‘공간의 밀도’다.

사춘기 소녀를 위한 제3의 공간

이 집의 또 다른 반전은 다락방이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딸에게는 자신만의 세계가 필요했다. 다락은 단순한 수납공간이 아니라, 비밀 요새와 같은 제3의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조명을 끄면 알전구가 은은하게 켜지고, 벽면에는 빔프로젝터를 통해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 화장실 바닥과 층고를 낮추면서 확보한 공중의 부피는 이렇게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전환되었다. 물리적으로는 최소한의 면적이지만, 심리적으로는 확장된 공간이다.

이 집은 크기로 말하는 집이 아니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 어떻게 공간을 재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실험이다. 43㎡라는 숫자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 안의 삶은 이전과 달라졌다. 작은 집일수록 설계는 더 정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교함은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일상을 얼마나 세심하게 이해했는가에 달려 있다. 이 집에서 소녀가 자신만의 세계를 꿈꾸고, 할머니가 안전하게 생활하며, 아버지가 하루의 피로를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협소함은 제약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을 오가다 쓰러져 뇌출혈로 입원했던 80대 할머니, 매일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비정규직 아버지, 그리고 하루 대부분을 혼자 보내는 사춘기 중학생 딸. 이 세 식구가 사는 집은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무단 증축이 이루어진 ‘ㅁ자’ 형태의 주택이었다. 등기상 면적은 43㎡, 약 13평. 진입도로 폭이 4m 이하였기 때문에 신축은 불가능했고, 기존 구조를 유지한 채 개축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다. 면적도 그대로, 높이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조건 속에서 세 사람이 살아갈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설계는 이 제한을 전제로 시작됐다. 작은 집이지만, 그 안에 담길 삶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 소개

양진석 건축가는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안양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와이그룹 대표 건축가로 활동하며, 건축교육프로그램 파이포럼의 주임교수로서 후학 양성과 건축 담론 확장에 힘쓰고 있다. 그의 저서 『집 짓다 담다 살다』(컬쳐그라피)는 방송을 통해 선보였던 여섯 채의 집을 중심으로, 기획과 설계,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아낸 기록이다. 방송에서는 다 전하지 못했던 건축적 고민과 현장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내며 집을 짓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깊이있게 조명한다.